대미 후속회담 기선잡기 전략/북,대화중단선언 왜 나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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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핵관련 미 강경 회피의도/당분간 관계경색 불가피/북·미 회담후 다른형태 제의 가능성도
북한은 26일 특사교환 제의를 남측이 무산시켰다고 공식 발표함으로써 사실상 핵문제를 둘러싼 남북대화를 기피하고 나섰다.
북한 강성산총리는 이날 담화를 통해 『남측의 부당한 태도로 말미암아 특사교환 제안이 실현될 수 없게 된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강 총리의 이번 담화는 일단 핵문제 등 남북간 현안을 둘러싼 남북대화에는 뜻이 없음을 분명히한 것으로 풀이된다.
강 총리가 담화에서 밝힌 특사교환안이 북측이 제안한 것인데도 이에 대해 『특사교환이 실현될 수 없게 됐다』고 밝힌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북한은 이날 이와같은 형식의 남북대화가 이뤄지지 못한 것은 남한측이 핵문제를 끼워 넣으려 함으로써 비롯된 것이라고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특히 북한의 이같은 담화는 우리측의 지난 22일의 전통문에서 북한이 제안한 특사교환을 전폭 수용했음에도 대화를 거부한 것으로 앞으로 남북관계는 경색국면으로 치달을 조짐이다.
북한의 이날 담화가 어떤 배경에서 나온 것인지가 문제다. 북한측의 노림은 담화의 발표시기가 이달말 또는 다음달초로 예정된 북한­미 고위급 후속회담 직전에 나온 것으로 미뤄 이 회담에 대한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북한측은 핵사찰 문제에 대한 미국의 강경한 입장을 잘 알고 있고,따라서 이에 대한 회피의 수단으로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대한 완전한 복귀가 아닌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만을 주장해 왔다. 따라서 북한은 그들의 강경입장을 남북대화의 중단으로 표시하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담화가 북한­미국간 고위급 접촉후의 한미 행정협의회에 이어 정종욱 외교안보수석이 미국을 다녀오는 등 북한 핵문제에 대한 한미 공조체제가 구체화된 뒤에 나왔다는 점도 주목된다. 또 한가지 해석은 북한­미 양자회담으로 남북간의 회담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축소됐다는 점이다.
이로써 북한과의 대화문제에 보수강경 일색으로 대처했던 정부는 북한에 대한 정책에 있어 북한­미회담을 지켜보는 방관자 입장으로 떨어지게 됐다.
북한의 이날 발표가 안보강화를 강조한 김영삼대통령의 잇따른 발언에 뒤이어 나왔다는 것은 북한이 문민정부와의 대화를 추구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 점에 대해 우리 정부측도 대응성명을 발표하는 등 상당히 단호해 남북관계는 당분간 냉랭해질 전망이다. 그러나 북한이 앞으로 다른 형식의 대화를 제의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이번 태도는 남북대화보다는 미국과의 접촉을 통해 더 많은 실리를 챙기면서 핵문제에 대한 지연전술일 수도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결국 미국과 북한의 2단계 핵회담에 달려있는 것 같다.<오영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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