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직접 협상으로 위독한 인질부터 살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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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국 정부와 탈레반 납치세력 간의 대면(對面) 협상이 곧 이뤄질 모양이다. 협상 장소를 둘러싼 이견이 아직 남아 있다지만 큰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호랑이 굴이라도 마다할 처지가 아니다. 테러 집단과 직접 협상에 나선다는 정치적 부담이야 있겠지만 형식이나 원칙의 문제에 연연하기에는 우리가 처한 상황이 너무 위급하다.

 남은 인질 21명 중 여성 2명의 건강이 극도로 악화돼 위중한 상태라고 한다. 탈레반의 주장을 그대로 다 믿을 순 없지만 정황으로 보면 충분히 그럴 만하다. 정부는 위독한 2명의 목숨부터 살리는 것으로 협상의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 아파서 죽어 가는 여성 인질을 방치함으로써 목숨을 잃게 하는 것은 탈레반으로서도 결코 좋을 게 없다는 점을 잘 설득해야 할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민간 의료진 6명이 위독한 인질들을 돌볼 수 있게 해 달라며 자원해 현지로 갔다. 석방이 어렵다면 이들을 통해 치료라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더 이상의 추가 살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충분한 협상 시한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명확하게 제시하되, 적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100% 약속을 이행한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 하지만 추가 살해가 발생하면 협상은 그걸로 끝이며, 그 이후의 모든 사태에 대해서는 탈레반 측 책임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해둘 필요가 있다.

 탈레반 수감자 석방이라는 납치범들의 요구를 우리가 들어줄 수 있는 방법이 현실적으로 없는 상태에서 이 협상은 ‘불가능한 임무’에 가깝다. 결국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믿음으로 한 가닥 남아 있을지 모를 그들의 마지막 양심을 향해 간절하게 호소할 수밖에 없다. 아프간 정부를 통한 간접 협상은 사실상 결렬됐다. 어쩌면 이번 직접 대화는 협상으로 사태 해결을 시도하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 모른다. 무고한 우리 국민 21명의 목숨이 협상단의 어깨에 달려 있다. 비상한 각오와 철저한 준비로 담판에 임할 것을 당부한다. 지혜와 용기가 함께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