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원짜리 챙기는 손님 많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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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개인택시 운전기사 조원학(71)씨는 요즘 어떤 때는 한시간 내내 빈차로 시내를 달린다. 하루에 요금 5천원이 넘는 거리를 가는 손님을 태우는 일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그는 "우리 동네인 은평구 일대를 빙빙 돌다가 한강을 한번도 건너지 않고 귀가할 때도 적지 않아 '마을 택시'가 다 됐다"고 말했다. 45년 동안 핸들을 잡아 손님이 탈 만한 길목을 훤히 알고 있지만 불경기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것.

조씨는 아침마다 1백원짜리 동전을 한 움큼씩 꼭 갖고 나온다. 몇백원 안되는 우수리를 받아가는 손님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그는 "경기가 좋을 땐 적지 않은 손님들이 잔돈을 안 받았으나 요즘엔 꼬박 꼬박 챙긴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인심을 탓할 것은 아니고, 그만큼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이 나빠진 것"이라며 "택시는 서민들이 타는 것"이라고 했다.

조씨가 내리는 경기 진단은 간명하다. 개인택시조합 안에 있는 운전자 복지회에서 사망 부조금을 많이 떼면 경기가 안 좋아진 것을 직감한다. 예전에 한시간에 번 돈을 요즘 벌려면 두세 시간 돌아다녀야 하고 그만큼 무리하게 핸들을 잡다가 병을 키워 숨지는 운전자가 늘어난다고 그는 설명했다. 또 손님을 찾다가 지친 택시들이 대로변이나 건널목에 늘어서 있으면 백발백중 불경기다. 이 바람에 교통 흐름은 더 나빠져 힘은 더 든다.

조씨의 수입 역시 크게 줄었다. 2년 전만 해도 그럭 저럭 가스값과 점심값 등을 빼고도 한달에 2백만원 벌이는 됐다. 하지만 근래에는 1백50만원 벌기가 땀이 난다. 오전 6시에 나와 저녁 8시까지 하루 14시간씩 한달에 20일 일해 버는 돈이다. 요즘에는 한끼에 4천원 하는 기사식당 밥값이 아까워 저녁은 집에서 먹는다.

그러나 조씨는 세상에 대한 불평을 안한다. 핸들 하나로 1남2녀의 자식 뒷바라지를 했고, 정년 없이 일하는 것이 어디냐고 반문한다. 조씨는 어깨 처진 '청년 실업'을 더 걱정하며 이내 정치에 화살을 돌렸다. "정치인은 저들 잇속 챙기느라 날밤 새는 줄 몰라요. 경제는 내팽개치고, 결국 등 터지는 것은 애꿎은 젊은이들입니다."

이어 얼마 전 빚에 쫓긴 일가족 네명이 자가용 안에서 함께 자살한 사건을 꺼내며 안타까워했다. "말 못할 사정이 있겠지요. 그러나 왜 죽습니까. 나 같으면 그 자가용을 팔아 쌀과 소금부터 살 겁니다." 그는 "버틸 때까지 버티는 게 인생"이라며 가속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요즘 택시기사들은=서울개인택시조합에 따르면 운전자의 벌이는 최근 1년 새 평균 20% 넘게 줄었다. 조합의 이명구 기획과장은 "2년 전만 해도 하루 벌이가 10만원이 넘었는데 이젠 평균 8만원이 채 안된다"고 말했다. 개인택시조합에 가입한 모범택시들이 호출받는 건수 역시 연간 70만회를 웃돌았으나 지난해엔 50만회대로 크게 줄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운전자들은 차량 월부금과 자녀 학비 등을 대느라 장시간 운전하게 된다. 이에 따라 돌연사하는 사례도 늘었다. 조합은 지난해 60명의 개인택시 운전자가 사망했다고 밝혔다. 전년에 비해 20% 가량 늘어난 수치다. 서울 개인택시는 지난해 말 현재 4만7천여대다.

고윤희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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