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장편 재출간 러시(이어령 이문열 이청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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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이어령·이문열씨가 독자의 심판을 다시 받겠다며 10년만에 각각 장편소설을 재 출간했다. 초대 문화부장관을 지냈던 이어령씨는 창작활동을 재개하면서 『나의 문학적 애정을 모두 쏟아 부었던 작품』이라며 『둥지 속의 날개』를, 최고 인기작가 이문열씨는 『내 이름을 달고 나간 책이 괘 그리 팔리지 않았는지를 납득할 수 없다』며 『미로의 날들』을 펴냈다.
56년 평론 『우상의 파괴』로 문단에 나온 이어령씨는 65년 중편 『장군의 수염』을 내놓으며 소설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둥지 속의 날개』는 이씨의 첫 장편소설로 84년 홍성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됐던 것을 이번 동화서적에서 편집을 새롭게 해 상·하 2권으로 다시 내놓은 것이다.
70년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한『둥지 속의 날개』는 당시로서는 최첨단 직업인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첨단산업사회의 상업적 속성과 함께 유년·의식의 밑바탕에 잠재된 개인의 욕구를 드러내고있다.『둥지에 갇혀 있으면서도 끝없이 하늘을 나는 새들의 이야기, 그 날개는 사람일수도, 예술일수도 있고, 거대한 욕망의 시장일수도 있는 그런 이야기를 썼다』는 이씨는 이 작품이 『인간내면의 탐구·문명 비평적 소설로 본격 재조명되길 바란다』고 재 출간하게된 동기를 밝히고 있다.
미래문학에서 펴낸 이문열씨의 『미로의 날들』은 83년 여원에서 『미로일지』라는 제목으로 나온 장편을 제목을 바꾸고 내용도 부분적으로 수정해 다시 내놓은 것. 당시 유행처럼 번지던 민중문학에 맞서 관중을 치켜세우기보다 그들의 실상을 보여줌으로써 천박한 이기와 비굴을 반성케 하겠다』며 펴낸이 책은 판매면에서 베스트셀러 제조기라던 이씨에게 참담한 실패를 안겨 주었다.
79년 『사람의 아들』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던 이씨의 작품들은 나왔다하면 최소한 10만권 단위로 팔려나가는 폭발적 인기를 누려왔다. 그러나 『미로일지』만큼은 1만여부 밖에 소화시키지 못하는 참담함을 안겨주었다.
『미로의 날들』은 교육대학을 갓 졸업한 예비교사인 주인공이 중소업체에 들어가 겪는 여러 사건들을 더듬으면서 거기에 도사린 음모와 삶의 허구성을 고발하고 있는 일종의 기업소설. 이씨는 이 작품에서 한 순진한 청년의 눈을 빌려 노동자·관리자 할 것 없이 인간 모두가 지니고 있는 이기주의 행태, 거기서 비롯된 비리와 횡포 등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 있다.
『나름대로 특성도 있고, 또 내가 쓴 것들 중 가장 재미있는 책 중의 하나인데도 독자의 시선을 끄는데 실패한 원인을 10년이 지난 지금 되씹어도 알 길이 없다』는 이씨는『당시 민중이라면 불문곡직하고 미화하거나 과장하는 유행에 승복할 수 없었듯 지금 이 책의 그 같은 운명에 대해서도 승복할 수 없다』며 다시 한번 독자의 심판을 받겠다고 했다. 두 이씨의 작품뿐 아니라 올 봄 들어서는 역사인물소설 쇠퇴와 함께 그 공백을 메우려는 듯 본격문학작품들이 활발히 재 출간되고 있다.
지난해말 『남도사람』연작을 10여년 만에 다시 편집해 내놓은 이청준씨의 『서편제』(열림원간)가 하루 1천∼2천권씩 나가며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영화화의 성공과도 무관하지 않으나 크게는 본격문학을 찾는 독서계의 바뀐 흐름의 반영이다.
그러나 80년대이래 민중문학과 「옛이야기 같은 소설」에 밀려났던 작품들의 재 출간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이제 본격순수문학을 찾아 제자리로 돌아가는 독서계를 위해선『흘러간 작품들보다 새 작품으로 승부를 거는 것이 작가의 진정한 도리』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견해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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