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새연재소설 『그 여자의 사계』작가 신경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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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낯선 기분으로 왠지 떨림만 다가오네요. 스쳐 이내 사라질 것이지만 저기 저 만큼 앞에서 다가오는 우리의 생이 그러하듯 말입니다. 지금까지 해본 일 가운데 분명 가장 모험적인 것이 될 신문 연재를 맡아 작가로서 바른 자세를 갖겠다는 말 밖에는 못 드리겠군요. 보잘 것 없고 쓸쓸한 삶의 풍경일지라도 독자여러분께서 열심히 읽고 사랑해 주시기만을 빌 뿐입니다.』 작가 신경숙씨가 본지 26일자부터 장편소설 『그 여자의 사계』연재에 들어간다.
63년 전북정읍에서 태어난 신씨는 85년『문예중앙』신인문학상에 중편「겨울우화」가 당선돼 문단에 나왔다.
신씨는 말을 잘 못한다. 아니 삶의 모든 것을 말로 하려 하지 않고 대신 울어버리려 한다. 실컷 울어버리고 나서 「꺽꺽」목멘 소리로 하소연하는 것이 그녀의 소설이다. 말은 아주 아끼고 못하는 축인데도 그녀의 작품들은 올 봄 들어 우리문단에 대단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주요문예지들이 앞다퉈 그녀의 작품을 싣고 있는가 하면 매스컴들은 「문체미학의 승리」「어떻게 해볼 수 없는 쓸쓸한 우리들 삶의 진실된 목소리」운운하며 아낌없는 찬사를 쏟아 붓고 있다.
말은 가슴속에 묻어두고 썩여 소설로 짜는 신씨의 첫 장편인 『그 여자의 사계』는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현대 빌딩 숲속에서 살며 한 남자를 지극히 사랑하고 또 다른 남자로부터 지극한 사랑을 받는 배반된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한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베풀 수 있는 끝간데 없는 사랑과 반대로 바로 그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서 그러한 사랑을 받는 줄 알면서도 무관심이라는 이름으로 뿜어낼 수 있는 온갖 차가움을 그려보려 합니다. 그러면서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변할 수 없는 사랑의 선과 악, 두 측면을 드러냈으면 합니다.』
머리감는 일, 엘리베이터 타는 일, 시장에서 나물 사는 일, 미장원 가는 일, 손톱깎는 일, 영양크림 바르는 일, 향수뿌리고 남자와 동침하는 일등 어찌보면 무미건조한 한 여자의 일상이면서도 그 속에서 신씨는 세상을 세우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하며 사랑의 본질을 찾겠다고 한다.
신씨의 소설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문장을 던져 이룩된다. 독자들에게 꽉찬 무엇을 주는 것이 아니라 텅빔 만을 준다. 신씨의 작품을 읽는 사람들은 허허롭다. 옛날옛날 스치고 지나갔던 한 소녀의 눈빛만을 시적인 문체로 우리들 가슴속에 던져놓는다. 대체 이 바쁜 현대 생활속에 이런 빈 소설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생각도 들게 한다. 그러나 바쁠수록 꽉 채우고 싶은 우리의 일상일수록 우리의 텅빔은 또 얼마나 필요한가. 텅비게 하면서 결국 온세상 통통 털어도 나밖에 없는 우리의 쓸쓸한 생에 신씨의 문장들은 외로운 친구, 또 하나의 자신의 모습으로 찾아든다.
『가능한 한 심리적·미학적으로, 소박하나 절실한 어조로 한여자를 그리겠어요. 그 여자는 항상 저와 같이 할 거예요. 밥을 먹든, 진달래를 보든, 꿈을 꾸든 그 여자와 같이 살아가겠습니다. 제 펜끝을 떠난 그 여자가 독자들 가슴속에도 살았으면 합니다. 어쩔 수 없는 소설 쓰는 여자로서의 욕심이에요.』
사랑에 대해서는 그 뿌리까지 깊이깊이 알고 있지만 신씨는 아직 시집도 안간 혼자 사는 여자다. <이경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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