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을 조심하세요-힛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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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14면

괴물이 아닌 사람에게 공포를 느끼는 건 어떤 순간일까?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는 것? 가까운 사람에게서 전혀 의외의 모습을 보았을 때? 하지만 이런 것들은 자신의 예상과 빗나갔을 때 느끼는 논리적인 공포라 할 수 있다. 사람에게서 느끼는 원초적 공포는, 컴컴한 길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누군가와 문득 맞닥뜨렸을 때의 느낌 같은 것이다. 그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분간하지 못한 채 느끼는 공포. ‘힛쳐’는 그 순간의 공포를 극단으로 끌어올린 것 같은 영화다.

★★☆ 감독 데이브 마이어스 주연 숀 빈·소피아 부쉬·잭카리 나이튼 러닝타임 83분

대학생인 그레이스와 짐은 낡은 중고차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빗속에서 어두컴컴한 시골길을 달리던 그들은 고장 난 차와 남자를 발견한다. 그레이스는 뭔가 불안하다며 그냥 가자고 짐을 설득한다. 남자를 지나쳐온 그들은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에 들르고, 얼마 후 아까 본 그 남자 존 라이더가 들어온다. 모텔을 찾는 라이더에게 미안함을 느낀 짐은, 모텔까지 태워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악몽은 시작된다.

미국에서 히치하이커를 태우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지 어떻게 판단할까? 보통은 외모와 복장 정도로 그가 위험한지 아닌지 평가한다. 그레이스와 짐의 차에 탄 존 라이더는 얼핏 보기에 멀쩡해 보인다. 하지만 그는 자신조차도 죽이고 싶어 안달이 난 연쇄살인마였다.

‘힛쳐’는 1986년에 만들어진 영화의 리메이크작이다. 원작은 길에서 만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에게서 느끼는 공포를 탁월하게 보여줬다. 이유는 모른다. 내가 죽어야 할 당위는 없다. 하지만 그런 우연은 이 세상에 수도 없이 존재한다. 단지 재수가 없어서, 오늘은 내가 죽는 것뿐이다. 86년 원작의 룻거 하우어는 냉정하게 운전자들을 죽이는 살인마 역을 소름 끼치게 연기했다. 룻거 하우어가 아니었다면 원작 ‘힛쳐’는 평범한 스릴러물이 되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다시 만든 ‘힛쳐’의 숀 빈은 역부족이다. 여전사가 된 그레이스와의 대결까지 추가했지만, 여전히 원작의 서늘함을 끌어내지는 못한다. 시간 때우기용 스릴러로는 적당하지만.

글 김봉석(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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