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대통령은 몸으로 근검절약을 실천한 지도자였다. 아무도 보지않는 거실의 변기물통에 벽돌 한장을 넣어 물을 아꼈다. 전속 이발사 박수웅씨는 대통령의 러닝셔츠에 뚫린 구멍을 보고 몰래 눈물 흘린 적도 있다.
박 대통령은 70년초 일부 국회의원·재벌기업인·고위관리가 호화주택을 갖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사정반에 그집들을 사진찍어 보고하도록 했다. 박 대통령은 사진첩을 훑어본뒤 김정렴비서실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집,이집은 안되겠어요. 자기 돈이니까 마음대로 써도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말이 됩니까. 근로자와 국민은 고생하고 있는데…. 더구나 지도층인사들이 그래선 안되죠.』
박 대통령은 조치토록 명을 내렸다. 김 실장은 지목받은 기업인들을 한사람씩 청와대 본관2층으로 불렀다. 그들의 항변은 여러가지였다. 『손톱만큼도 법을 어긴 적이 없어요』『내가 고생하며 번 돈으로 지은 건데』 등등.
김 실장은 이렇게 설득했다고 한다. 『지금 당신이 앉아있는 2층이 바로 대통령집입니다. 그나마 영부인 집무실·비서실장실·부속실을 빼고나면 겨우 침실하고 자녀방·서재·거실뿐입니다. 당신이 기업해서 돈을 벌었다고 하지만 나라가 도와줘 성공한 것 아닙니까.』 문제의 기업인들은 대개 돌아가서 집을 처분했다고 한다.
국회의원·고위관리들은 민정수석비서관을 통해 박 대통령의 「경고친서」를 받았다. 받는 순간 얼굴이 새파래졌던 것은 물론이다. 수개월동안 「발송된」 경고친서는 모두 20여통,편지를 받았던 의원들은 71년 총선(8대)때 공천에서 탈락했다. 이런 사정작업은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다. 93년 봄 한국사회를 강타한 재산공개파문은 31일로 일단 마무리된 것 같다. 그 회오리속에서 몇몇 지도층 거물이 세인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퇴장했다. 그들은 대통령과 여론을 원망하면서 떠났다. 누구는 「토사구팽」이라고 소리쳤다. 겨우 퇴장을 면한 의원·고위관리 20여명은 공개·비공개로 대통령,또는 총리의 경고친서를 받았다. 박 대통령이 썼던 편지가 20여년만에 다시 등장한 셈이다.
「93년 3월31일」이 경고친서의 마지막 배달일자가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