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보따리 쌌다 풀기 수십번”/타지크의 한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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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정든 터전 버리고 한인 절반 떠나/저녁 9시 되면 통금… 학교도 휴교
【두샨베=김석환특파원 2신】 「집팝니다」
두샨베 시내 곳곳에 붙어있는 이같은 안내광고는 타지크의 혼란상과 이곳 주민들의 불안감을 잘 반영하고 있다.
하늘에서 보면 지상천국과도 같이 아름다운 산천에 둘러싸여 있는 타지크공화국.
히말라야의 지맥과 연결된 산봉우리들이 하늘을 향해 우뚝우뚝 솟아있고 그 위에 흰눈이 솜사탕처럼 덮여있는 이곳 두샨베의 풍경은 그야말로 신선의 나라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같은 느낌은 요즘 두샨베 시내를 한바퀴만 둘러보면 여지없이 사라져 버린다.
1년여 전부터 시작된 내전으로 시내 주요 건물엔 중무장한 군인들이 삼엄한 경비를 서고 이곳저곳엔 포탄의 상흔이 어지러운 건물들이 괴물처럼 서있다.
지난해 11월 이후 현 정부가 사태를 장악해 나가고 러시아 지원군이 주요건물을 경비해 치안은 많이 회복되었지만 오후 9시부터 시작되는 통금,휴교사태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내전이 몰고온 이와같은 혼란은 특히 이곳의 소수민족인 한인들의 생활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주로 두샨베·레니나바트·쿨랴브지방에 모여 살면서 쌀농사·목축 등을 통해 비교적 풍요롭게 살던 한인들은 1년여 지속된 내전으로 인구의 절반정도가 우즈베크·러시아의 원동,카프카스 등으로 이주해 이제는 6천∼7천명 정도만이 이곳에 남아있다.
두샨베 시내 아야바이구역.
한인들이 고려인 부락을 형성,집단으로 거주하는 이곳에도 「집 팝니다」라는 광고를 써붙인 집들이 눈에 띈다.
타지크인 남편을 쿨랴브에 둔채 노모·어린딸과 함께 이곳으로 피난온 고려인 여인의 가족도 눈에 띄고 계속되는 혼란에 피난보따리를 쌌다 풀었다를 수십번 했다는 동포들도 있다.
타지크 한인회 부회장 김 빅토르씨의 말.
『지금은 상황이 많이 안정되었지만 작년엔 정말 대단했지요. 한인들을 비롯해 러시아인·타지크인 할 것 없이 피난준비를 했으니까요.
러시아인들은 비행기를 타고 떠나고,총성은 들리고 한인들의 동요도 대단했습니다.』
타지크에 아직 남아있는 한인은 대부분 어느정도의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다.
한인들은 이곳에서도 쌀농사를 지어 부를 형성했고 유달리 높은 교육열로 대부분 고등교육을 받아 주택규모도 클뿐 아니라 한채 이상 소유한 경우도 많다.
초창기 원동에서 이곳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세대는 악몽을 기억하고 살아왔지만 2세,3세들은 그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남부럽지 않게 살아왔다.
타지크 본타쥬스페츠은행 이사장 홍 일라리온씨.
『처음엔 많이들 떠났지요. 그리고 다들 떠나려고들 했지요. 하지만 이곳을 떠나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이곳이고 선조들이 온갖 고생끝에 터전을 닦아온 곳이 이곳 아닙니까.』
홍씨의 말처럼 처음에는 아프가니스탄 국경쪽에서 도망쳐온 피난민들의 행렬과 이들의 집단탈출·출국의 분위기로 타지크내 한인들중 비교적 가난한 사람들이 먼저 홀가분하게 타지크를 떠났다.
그후 러시아군이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이곳에 온다는 소문도 돌았고,이슬람 부흥당에 밀렸던 현정부가 서서히 사태를 장악해 나가면서 한인들의 동요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현재 두샨베에는 한인들의 집단촌인 아야바이지역을 중심으로 한인들이 대책위를 구성,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초창기와 달리 한인난민들의 숫자가 크게 줄어든데다 치안도 비교적 정상화돼 일상적인 상업활동을 하면서 아프간 국경지역 등으로부터 피난온 난민들의 정상생활을 돕고있다.
남부 쿨랴브 등지로부터 피난온 난민들은 친척·친지들의 도움을 얻어 거주하고 있다.
두샨베 등은 치안을 회복했지만 그곳에선 아직 전투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난민들은 초창기에는 타지크내 다른 종족들과 함께 임시 피난민 숙소로 개조된 학교·호텔 등에 섞여 생활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모두 빠져나와 요즘엔 시내의 허름한 아파트 등을 세내 생활하기도 하고 친지들의 집에 얹혀 지내면서 하루빨리 사태가 호전돼 원거주지로 돌아갈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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