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시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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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하루 내 저울질한
어둠이 짐을 푼다
누렇게 뜬 속잎은
지전인 양 살이 얇고
소금기 마른 날들이
문신으로 뜨인다
덤으로 다시 얹은
별빛마저 와서 떠도
눈멀어 가슴 한 뼘
늘 시린 물빛이다
접어 둔 질긴 인연이
뿌리 솟아 일어난다
무릎에 쌓인 소음
부수수 떨어내면
우수는 익은 열매
고향으로 가서 지고
하루는 어깨를 풀어
가장 낮게 눕는다
고단한 날개를 접는 황혼 무렵의 쓸쓸함은 철들기 이전부터의 묵은 습성이었다.
함성도 그친 빈 운동장에 찢긴 만국기 몇 장이 바람에 날릴 때, 돌아간 아이들의 체온이 아직 남은 놀이터의 빈 그네, 기다림으로 서성이는 사람들로 늘 타관 같은 역 대합실에서…. 곧잘 깊이도 모를 허전함과 막막함에 젖게 된다.
오늘 하루를 비록 열심히 뛰며 힘겹게 살았더라도 저녁 녘 돌아오는 발걸음엔 짙게 우수가 깔리고 어깨를 짓누르는 쓸쓸함을 떨쳐 버리기가 어렵다.
그러나 생활의 무게가 아무리 무겁더라도, 저 시장 통의 삶의 모습이 어떻게 억척스러웠을지라도 저마다의 가슴에 지닌 따스함에 함께 작은 등불을 밝히고 싶다.

<약력>
▲이화여대 국문과 졸
▲시조 문학 천료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부산여류시소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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