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번호 안내원의 고운 목소리「114합창단」|65년에 첫선 각종 합창경연대회 휩쓸어|남 직원과 혼성…화음으로 씻는 하루피로-전화번호 안내원의 고운 목소리「114합창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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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얼굴 없는 목소리로 수많은 사람들과 최소한 한번씩은 통화를 주고받은 사람들, 114전화번호 안내원. 쉴새없이 걸려 오는 문의전화에 시달리는 그들이 짬을 내 노래를 부르고 있다. 「114합창단」은 한국통신 서울번호 안내 국 직원들의 혼성합창단으로 일도 열심, 살림도 열심, 게다가 노래까지 열심인 안내원들의 고운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고 있다.
사무적인 전화응답을 하며 사람들에겐 다소「딱딱하다」는 이미지로 알려진 전화전호 안내원들도 알고 보면 노래를 좋아하는「부드러운 사람들」이다. 말께 화음을 맞추다 보면 전화통에 시달리던 괴로움도 말끔히 씻겨지고 삶에 대한 의욕이 되살아난다』고 입을 모으는 단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고락을 함께 해온 친구들. 65년에 여성합창단으로 창단 되었던 것이 83년부터는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가 섞인 혼성합창단이 됐다. 대부분 30∼40대 주부들인 단원들 중에는 10년 이상 노래를 해 온 이들이 수두룩하며 그동안 서울시 건전 가요 합창경연대회 등 각종 합창경연대회에서 상을 휩쓸어 온 막강한 노래실력은 114의 굳은 자존심이다.
단원은 모두 50명. 전화번호를 안내하는 여성직원 40명과 기술부·총무부 등의 부서에 근무하는 남성직원 10명이 일주일에 두 번 호흡을 맞춘다. 24시간 풀 가동되고 10교대로 이루어지는 번호 안내 국 근무체제에서 단원들이 시간에 맞춰 한자리에 모이는 일은 쉽지 않지만 비번인 날에도 연습을 위해 일부러 나오는 단원들의 열의는 오히려 114합창단의 또 다른 자부심이기도 하다. 인천 시립합창단에 몸을 담고 있는 한창석씨(지휘)와 안내국장인 조인희씨(단장)의 애정 어린 보살핌도 빼놓을 수 없는 자랑.
114합창단원들은 최근에 제1회 연주회를 가졌다. 창 단 이후 지금까지 대외활동은 활발하게 해 왔으나 이들만의 순수한 연주회는 한번도 없었는데 지난 13일엔 서울 중구 구민회관에서 직장 동료들과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저 구름 흘러가는 곳』을 비롯한 한국가곡과 민요·팝·가요까지 불렀다. 특히 이번 연주회에는 안내원들의 시부모님을 비롯, 남편과 아이들 등 많은 가족들이 참가해 전하번호 안내원으로 일하는 그들의 또 다른 모습을 보는 뜻깊은 자리가 됐다.
이 합창단의 단원이며 매니저인 박윤영씨는『올해는 가족·동료들과 함께 한 작은 자리였지만 앞으로는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노래실력으로 무장해 연주회에 많은 시민들을 초대할 계획』이라며『전화로만 대화를 주고받는 전화번호 안내원으로서만이 아니라 노래를 부르는 다정한 이웃의 모습으로 시민들과 더욱 가까워지는 게 114합창단원들 모두의 바람』이라고 밝혔다. <이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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