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초라한 고민」/김수길(평기자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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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해가 겨울의 문턱에 들어설때,「미국이 재채기를 하면 한국은 감기몸살에 걸린다」는 한때의 우스개같은 이야기가 아직도 진실일지 모른다는 생각은 우리를 초라하게 만든다.
정말 진실일 수도 있는 것이,미국 국민이 부시 대신 클린턴을 선택하자 한국정부의 고위관계자가 『금융자율화 및 국제화에 관한 3단계 계획을 전향적으로 수립한다』며 미국에 선수를 친 것은 우리를 초라하게 만드는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허약한 논리적 뒷받침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지 않아 미 재무부차관보가 『우리는 너희 정부와는 달리 새 정부가 들어서면 정책의 기조가 많이 달라지니 올 연말로 예정된 한국의 금융개방 일정서(Blue Print) 발표시기도 차기정부 이후로 신중히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떠냐』는 뜻을 비공식적으로 전해왔다는 뒷얘기는 우리를 거듭 초라하게 만든다.
딴은 정부만 그랬다고 손가락질 할 수는 없다. 정부도 그같은 회의를 하고 싶어서 한게 아니라 『클린턴 시대의 경제정책은 무엇이냐』고 다그치는 국회와 『정부는 다각적인 대책마련에 착수했다』며 지레 앞질러 가는 언론을 의식해 한 것이겠거니 하는 짐작이 평소 우리 사회의 현실로 충분히 뒷받침 되고도 남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말 초라한줄 알아야 하는 것은 「클린턴노믹스」의 파고가 어느날 갑자기 밀려와 한국경제를 강타할 것 같아서가 아니다. 우리가 초라해지는 것은 클린턴노믹스의 탄탄한 「이론적 배경」과 한국 대권후보들의 대선공약에 줄줄이 내걸려 있는 「번듯한 구호」들이 어쩔 수 없이 자꾸만 극적으로 대비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경제가 최대의 현안이 되었던 미 대통령선거에서 클린턴과 부시가 맞서 정책공방을 펼칠때 미국 유권자들은 「경제는 선택」이라는 불변의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을 것이다.
○번듯한 공약만 남발
부시가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해 경제가 성장하면 자연히 일자리가 늘게 되어있다』고 말할때 클린턴은 『기업위주의 경제정책은 이제 한물 갔다. 정부는 교육을 통해 노동의 질을 높여 고임금­고기술의 경제를 일궈야만 세계경제의 격변속에서 살아 남을 수 있다』고 맞섰다. 또 부시가 감세와 정부 규제완화를 정책기조로 내세울때 클린턴은 증세와 적극적인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어느쪽이 옳든 그르든 부시나 클린턴은 나름대로 분명히 일관된 논리를 지켰고 서로의 인식과 처방이 다르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그래서 미국 국민들은,예컨대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최대한 보장하고 정부규제를 완화하는 한편 정부가 적극적으로 직업교육 등에 개입,기업 위주가 아닌 중산층 위주의 경제정책으로 전환하며,경제활성화를 위해 감세하면서 재정을 늘리겠다」는 후보를 앞에 놓고 긴가 민가 헷갈릴 필요 없이 부시든 클린턴이든 어느 한사람을 선택하면 되었다.
그러나 투표날을 잡아놓은 한국의 유권자들은 각 당의 번듯한 공약을 앞에 놓고 초라한 고민을 하게 생겼다. 대권후보들의 인물 됨됨이는 전혀 초라하지 않은데 그 훤한 인물이 다 가려지고도 남을만큼 그들의 대선공약이 다들 너무 번듯하기 때문이다.
지혜는 참모로부터 얻을 수 있어도 건강만큼은 자신이 지켜야 하는 과중한 부담 때문인지는 몰라도,그들은 「경제는 선택」이라는 교과서 제1장의 첫 페이지도 평소에 읽은 적이 없음을 곳곳에서 보여주고 있다.
유권자의 한사람으로서 진정 초라해지는 것은,왜 우리에게는 『금융을 자율화 하면서 중소기업 의무대출 비율을 올리겠다』는 후보는 흔해도 『우리의 현실상 금융자율화를 뒤로 미루더라도 중소기업 등을 위한 정책금융의 비중은 당분간 더 높여나가겠다』고 떳떳이 말하는 후보는 없는가 하는 점 때문이다.
○소신필요한 대권후보
또한 『어느 정도의 인플레를 감수하고라도 다시 고성장 정책으로 돌아가 일단 국민소득 2만달러를 달성한뒤 비로소 저물가·저금리의 선진국형 경제로 가겠다』고 소신을 밝히며,『1년안에 물가상승률을 3% 안으로 잡고 금리도 6%로 낮춰 5년안에 국민소득을 2만달러로 끌어올리겠다』고 외치고 다니는 다른 후보들을 「허풍쟁이」로 몰아붙이는 후보가 왜 나오지 않느냐는 것 역시 우리를 초라하게 만들기는 마찬가지다.
겨울의 문턱에 서서 클린턴을 고른 미국의 선택을 보며 「우리의 선택은 어차피 초라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때면,어떤 억울함을 떨쳐 버릴 수 없다.<경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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