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 모은돈 이웃돕기 앞장/저축의 날 역대수상자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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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설렁탕집 할머니 10억 장학사업 기증/80년대부터 탤런트 등 연예인도 수상
돈은 벌기보다 쓰기가 더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쓰지 않고 저축하기가 더 어렵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경제의 살 길은 저축이다. 우리처럼 해마다 「저축왕」을 뽑아 훈장까지 주는 나라는 그리 흔치 않은데 역대 저축의 날 수상자들을 살펴보면 마치 우리 경제가 걸어온 길의 축소판 「인물사」를 보는 것 같다.
64년에 만들어진 저축의 날은 올해로 29돌을 맞는다. 초기에는 은행장 등 금융계 인사들이 상을 받았으나 70년대부터 보통사람들이 훈장수상자로 많이 선정됐다. 76년에는 빵행상으로 당시에는 큰 돈인 3백만원을 저축한 노인이 국민훈장 석류장을,79년에는 27년동안 헌 신발을 기워온 사람이 7백만원을 저축해 대통령상을 받았다.
수상자들은 한결같이 20∼30년 고생해 돈을 벌어 저축했으며,불우한 처지에 있는 이웃들을 돕는다. 85년 목련장을 받은 「수원 욕쟁이」 김어진할머니가 대표적인데 김 할머니는 35년동안 설렁탕집을 해 모은 돈 10억원의 재산을 장학사업에 내놓아 화제가 됐었다.
직업을 밝히기 어려운 수상자도 있었다. 몇년 전에는 인천 사창가의 포주 아주머니가 수상자 후보에 올랐는데 직업이 직업인지라 논란이 벌어졌다가 데리고 있는 여인들 모두를 저축에 동참케 했다는 점이 인정돼 결국 상을 받았다.
코미디언·가수·탤런트 등 연예인들도 80년대부터 수상자에 올랐다. 흔히 사치스런 생활을 해 저축과는 거리가 먼것처럼 인식되기 쉬운 연예인들이 알뜰살뜰 저축해 상을 받음으로써 홍보효과가 더욱 커졌다. 85년에는 코미디언 김희갑씨가 대통령 표창을,역시 코미디언인 김병조씨가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이듬해에도 여성코미디언 김영하씨가 대통령상을,만담가로 유명한 장소팔씨가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코미디언 임하룡씨도 87년에 대통령상을 안았다.
지점장이나 일선 영업담당시절 많은 저축을 끌어들여 상을 받았던 은행장들도 있다. 지난 1월 주택은행장에 처음으로 내부승진된 김재기씨는 76년 당시 주택은행 수표동 지점장으로 대통령상을 받았고,지난해 고졸 출신으로 최연소 은행장이 된 나응찬신한은행장은 지난 87년 상무시절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은 경력의 소유자다.<양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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