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과 「부끄러운 병」(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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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병역은 국민이면 누구나 지켜야할 기본적인 4대의무 가운데 하나다. 고대사회에서는 주로 족병과 모집병이 그 의무를 대신하다가 고려 목종 때에 이르러 군역에 대한 병제가 완성되었다. 16세 이상 60세 이하의 모든 남성에게 군역의 의무를 부과했으나 이 때도 예외는 있었다. 관원,공신의 자손,백정,노비 등은 제외시킨 것이다.
조선조에 이르러 이같은 예외규정이 차츰 확대된 까닭은 병역의 의무를 져야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양민·농민이었고,그들 모두가 현역으로 복무할 경우 토지경작에 노동력이 부족해 농업경제 기반이 크게 흔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부득이 병역을 치르게 되면 손실액을 보상해 주기도 하고,병역에서 빠지면 대신 농작물 따위를 나라에 바치는 제도도 생겨났다.
그러나 예외규정이 확대되면 될수록 병역면제의 혜택을 보는 사람들은 돈이 많거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어느시대,어느사회고 간에 가난한 사람,힘없는 사람이 집안형편 때문에 병역의무를 지지 않아도 되는 일은 별로 없었다. 다산 정약용도 『목민심서』에서 「군역을 공평하고 공정하게 하는 것이 백성을 다스리는 지름길」이라고 했다.
오늘날의 병역법은 전통사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징집면제 규정을 두고있다. 생계곤란자·중졸 이하의 저학력자·고아 등 「불우한」사람들,그리고 간질 등 정신질환자·생식기·폐결핵 등 「수치성」질환자들도 면제받도록 되어있다. 특히 금년에 수치성 질환자로 면제받은 사람은 연평균 현역입영자의 5%에 해당하는 1만1천5백여명이었다고 한다. 이를 놓고 일부 의원들은 고위층이나 부유층 자제들의 면제가 늘고 있다는 항간의 소문과 결부시켜 추궁했다.
우스갯 소리지만 현역 사병으로 입대하면 처음 듣는 소리가 「어둠의 자식들」이라고 한다. 면제자는 「신의 아들」이고 단축혜택을 받으면 「장군의 아들」「사람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모두가 소설제목·영화제목에서 따온 것인데 그만큼 병무행정이 불신받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없는 병을 만들어 국민의 당연한 의무를 외면하려 한다면 그런 행위야말로 가장 「부끄러운 병」이 아닐 수 없다.<정규웅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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