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문학」의 담담한 자화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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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작가 박완서씨가 자신의 삶과 작품세계를 총체적으로 다룬 『박완서 문학앨범』과 자전적 성장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동시에 펴냈다(웅진출판간). 「행복한 예술가의 초상」이란 부제가 달린 『박완서 문학앨범』에는 자선대표작 「그 가을의 사흘동안」「저문 날의 삽화5」2편과 함께 작가가 쓴 「내 인생 내 문학」, 평론가 권령민씨가 쓴박씨의 작품론 등을 함께 실어 박씨의 삶과 문학을 총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
70년 40세의 주부로 문단에 나온 박씨는 「내 인생 내 문학」에서 6·25때 죽은 오빠의 망령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소설 쓰기를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한쪽에선 오빠를 반동으로 몰아 갖은 악랄한 수단으로 어르고 공갈치고 협박함으로써 폐인을 만들어 놓았고, 다른 한쪽에선 폐인을 데려다 빨갱이라고 족치기가 맥이 빠졌는지 슬슬 가지고 놀고 장난치다 당장 죽지 않을 만큼의 총상을 입혀 내팽개치고 후퇴했다.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로 내팽개쳐진 그는 가족들마저 다 떠나고 텅 빈1·4후퇴 후의 서울에 남겨진 채 차마 눈뜨고는 못 볼 신고를 겪다가 죽었다. 사람 나고 이데올로기 난 게 아니라 이데올로기 나고 사람 난 세상은 그렇게 끔찍했다. 아무한테도 발설하지 못하고 우리 가족만의 비밀로 꼭꼭 숨겨둔 오빠의 죽음은 원귀가 된 것처럼 수시로 나를 괴롭혔다.』박씨의 데뷔작 장편 『나목』은 가족도 무너지고 사회규범도 뒤바뀐 6·25직후의 참담한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의 황폐한 모습을 그리며 인간의 가치를 묻고 있다. 어느 쪽 이데올로기에 의해 오빠가 죽었는지 모른다는 박씨의 소설들은 때문에 이념에 매달리지 않는다. 가족붕괴, 인간적 가치의 붕괴를 초래한 사회적 동인으로서 6·25를 파악한 박씨의 소설들은 자연 가족사적 범주에서 윤리 혹은 인간의 가치를 물으며 6·25 전후로 그 역사적 지평을 확대해가며 대중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게 권씨의 분석이다.
한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박씨는 자신이 출생한 31년부터 오빠가 양쪽 이데올로기에 당하는 1·4후퇴까지 작가의 성장과정과 당시의 세상을 소설형식을 빌려 회고하고 있다. <이경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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