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군처럼 이라크 장기주둔 美 전략 전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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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 08면

지난 5월 30일 미 백악관 브리핑룸. 이라크 상황을 설명하던 토니 스노 대변인이 ‘주한미군’을 언급했다. 그는 “위협에 대처해 미군이 한국에 주둔한 것처럼 이라크에서도 미군이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시 행정부가 미군의 이라크 장기 주둔 구상을 처음으로, 그것도 주한미군 모델의 적용을 밝힌 것이다. 이는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민주당이 다수인 의회와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군 철군 시한을 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동시에 이라크를 대 중동 군사전략의 거점이자 민주주의 확산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의지의 표시다.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을 찾은 인사들에게 여러 차례 '한국 모델(Korea Model)'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국방부가 한반도까지 관장하던 윌리엄 팰런 태평양사령관을 중동을 맡는 중부군 사령관에 임명한 것도 한국을 이라크 모델로 삼겠다는 의도라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뉴욕 타임스는 “미군이 주둔한 가운데 민주주의를 이루고 세계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은 부시 행정부엔 이라크 장기 주둔의 필요성을 강조할 매력적인 근거”라고 분석했다. 신문은 앙바르주의 알아사드, 바그다드 북부 발라드 공군기지, 남부의 탈릴 공군기지 등 3~4곳이 미국이 꼽는 장기 주둔 기지라고 소개했다.

미국의 이런 움직임은 대 이라크 정책의 일대 전환이다. 전면에 나서 치안을 맡는 데서 물러나 이라크 안정은 이라크인의 손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미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도 영향력을 계속 확보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미국이 이라크인 치안 인력 양성에 주력하고 주요 무장세력과의 휴전협정을 추진하는 것은 그 포석이다. 이라크 주둔 미군사령관인 레이먼드 오디어노 중장은 지난달 31일 “각급 지휘관들에게 무장세력, 부족 종교지도자들과 대화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며 “휴전을 위한 대화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시 행정부의 이런 전략이 성공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브루킹스 연구소(대니얼 바이먼, 케네스 폴락)는 최근 “미국의 새 이라크 전략이 실패한다면 이라크 종파 간 내전이 주변 지역으로 확산돼 대혼란의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임기 내에 전면적 철군을 단행할 가능성은 작다는 분석들이다. 이라크전을 강행한 부시 대통령이나 딕 체니 부통령 모두 ‘현재’가 아닌 ‘역사’를 통해 평가받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쿠르드족 자치지역인 아르빌에 파견된 한국 자이툰부대의 파병 연장은 미국에 긴요하다. 미국이 쿠르드족 자치지역까지 떠맡을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터키는 쿠르드족 분리독립주의자의 테러에 대항해 쿠르드족 자치지역을 공격할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자이툰부대의 파병 연장은 미국의 새 이라크 전략과 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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