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환의즐거운천자문] "네가 배우냐"… 칸의 여왕 있게 한 원로배우의 회초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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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공항에는 사람도 많고 사연도 많다. 표정만 보아도 스토리가 잡힌다. 기대감에 부풀어 떠나는 사람, 실망감을 안고 돌아오는 사람. 카메라 세례를 받는 사람 주변엔 경찰이 따라붙는다. 체포하려고 기다리는 건지, 팬들이 몰려 주인공이 다칠까봐 보호막이 되어주려는 건지 궁금하다면 주인공의 고개가 몇 도쯤 기울어 있는지 보면 된다.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전도연이 공항을 빠져나올 때의 풍경을 텔레비전은 반복해서 보여준다. 흥분의 자락이 남아 있지만 나라를 빛낸 이 전문직 여성은 애써 담담했고 물론 당당했다. 출국할 때는 일행의 멤버였지만 이제 그녀는 칸이 인정하는 '리멤버(remember)'가 된 것이다.

스스로는 기적이라고 표현했지만 전문가들은 결실이라고 말한다. 씨를 뿌리고 가꾸어야 결실을 보는 건 자연의 법칙이다. 천부적인 기질에 안목과 집념, 거기에 노련한 농부의 손길이 더해졌으니 햇살(광합성)만 받쳐준다면 튼실한 열매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

언제부턴가 상을 받은 기억보다 상을 준 이력이 더 쌓이는 게 부담스럽다. 상을 받는 건 기분 좋은 일이지만 상 받을 만한 사람을 가려내는 일은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마라톤대회에는 별도의 심사위원이 없다. 열심히 뛴 사람에게 상을 주는 게 아니라 첫 번째로 골인한 사람에게 메달을 걸어주면 되기 때문이다. 대중예술 분야는 다르다. 누가 대중의 마음을 움직여 감동의 물꼬를 트느냐가 중요한 기준인데 그 마음의 행방을 들여다볼 재간이 부족하니 어려움이 큰 것이다.

우리나라 영화제에 나타나는 배우들은 크게 보아 두 부류다. 상 주는 배우와 상 받는 배우다. 진심으로 축하해 주려고 미리 객석에 앉는 배우도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영광스러운(?) 후보로 등재돼도 행사장에 나타나지 않는 배우가 훨씬 많다. 수상통보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존심은 있어도 자긍심은 없기 때문일까. 하기야 배우들만 나무랄 일도 아니다. 상의 권위가 없거나 미흡한 게 실은 주된 이유다. 전도연이 칸영화제에 간 건 종려나무의 확답을 받고 간 게 아닐 것이다. 후보로만 거론돼도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서 온 유명 배우들도 마찬가지 심정일 것이다.

권위는 권위주의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실력과 존중, 공평에서 비롯된다. 한국 사회에 권위가 실종된 건 상 받을 사람과 벌 받을 사람을 제때에 제대로 가리지 않는 탓도 있다.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보면 '그때는 왜 말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벌은 그때 바로 주고 상은 좀 나중에 주어도 괜찮을 듯싶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예전에 드라마를 찍으며 원로배우로부터 '전도연 네가 배우냐, 앵무새지'라는 야단을 맞은 게 분발의 계기가 됐다는 고백이 나온다. 그때 반발심에서 앵무새로 살기로 마음먹었다면 관객은 오랜 기간 새장에 갇힌 그녀를 측은한 눈으로 지켜보았을 것이다. 유럽의 하늘을 비상하는 큰 새가 된 건 제때 벌 받고 반성한 덕분이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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