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작가 코엘료가 선물하는 성탄절 우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소설 '연금술사'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브라질 출신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56)는 매년 말이면 우화 한편씩을 써서 전 세계 주요 일간지들에 게재해 왔습니다. 올해는 출판사 문학동네를 통해 코엘료의 우화를 중앙일보에 단독으로 싣게 됐습니다. 삽화는 상명대 대학원 겸임교수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션 작가 한성옥씨의 작품입니다.

이 이야기가 아름다운 것은, 오랜 기간 많은 지역을 거치며 여러가지 다양한 모습들로 재구성돼 인간들의 상상력 속에 녹아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부터 내가 풀어놓을 이야기는 일본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들었으나, 실제로 그러한지는 잘 알 수 없다(나는 이 이야기를 크리스마스 전날 밤, 화롯가에 앉아서 들었다). 어쨌거나 내가 보기에 이 이야기는 삶 자체가 기적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넉넉한 마음을 갖지 못하고 자기의 탐욕을 꿈이라 여기며 좇는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죽비가 되리라 여겨진다.

아주 오랜 옛날, 홋카이도의 한 섬에 돌을 쪼아 하루하루 먹고사는 후미라는 젊은 석수장이가 살았다. 그는 체격이 좋고 건강했지만 자신의 운명에 만족하지 못하고 밤낮으로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

후미는 기독교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1년에 한 번 모든 사람들이 소원을 비는 크리스마스라는 날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날, 그는 온 마음을 다해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천사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너는 아픈 데 하나 없이 건강하고 자기 일에 열심히 매진해야 할 창창한 젊은이인데, 허구한 날 왜 그렇게 불만만 늘어놓는 거냐?"

"하느님께서 저만 차별하시니까 그렇죠. 제가 제 배경을 뛰어넘어 출세할 수 있는 기회도 주지 않으셨잖아요."

후미가 대답했다.

그의 말을 듣고 곰곰 생각하던 천사는 신을 찾아갔다. 그리고 후미가 영혼을 잃지 않도록 도와줄 것을 간구했다. 신이 말했다.

"그것이 네가 보기에 합당하다면 들어주마. 크리스마스이니 이제부터 후미가 바라는 모든 것이 이뤄지리라."

다음날, 열심히 돌을 쪼고 있던 후미는 보석으로 잔뜩 치장한 귀족의 마차행렬을 보게 되었다. 후미는 흙먼지를 뒤집어쓴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투덜거렸다.

"왜 난 귀족이 될 수 없는 거야? 귀족이 내 운명이라면 좀 좋아!"

"바라는 대로 이뤄지리라!"

천사는 기뻐하며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후미는 어마어마한 저택을 가진 귀족이 되어 있었다. 엄청난 토지와 수많은 하인과 말들이 모두 그의 것이었다. 후미는 매일 하인들을 줄줄이 거느리고 인근을 배회하며 예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길가에 서서 자신을 공경하는 눈길로 쳐다보는 것을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였다. 한낮의 열기가 참을 수 없을 만큼 뜨거웠다. 황금으로 수를 놓은 양산을 쓰고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후미가 석수장이였을 때 흘렸던 땀에 비해 결코 적지 않은 양이었다. 후미는 귀족이라는 것이 별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귀족 위에는 왕자들이 즐비했고, 또 그 위에는 황제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높은 곳에 태양이 있었다. 태양을 거스를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는 아무도 없었다. 태양이야말로 진정한 왕이었다.

"천사님, 왜 전 태양이 될 수 없는 걸까요? 그게 내 운명이라면 좋겠다고요!"

후미는 불평했다.

"바라는 대로 이뤄지리라!"

천사는 후미의 끝없는 욕심에 슬퍼지는 마음을 애써 감추며 소리쳤다.

그러자 후미는 바라던 대로 태양이 되었다.

후미는 하늘에서 찬란하게 빛을 발하며 뜻대로 곡식을 무르익게도 하고 까맣게 태울 수도 있는 자신의 막강한 힘에 감탄했다. 그런데 까만 점 하나가 그를 쫓아 요리조리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게다가 그것은 점점 더 커지기까지 했다.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후미는 자신를 빙 둘러싸고 있는 것이 바로 구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구름 때문에 이젠 땅조차 보이지 않을 지경에 이르자, 후미는 울음을 터뜨리며 소리쳤다.

"천사님! 구름이 태양보다 더 강하잖아요? 제가 구름이 되게 해주세요!"

"바라는 대로 이뤄지리라!"

천사가 대답했다.

그러자 후미는 구름으로 변했다. 후미는 자신의 꿈이 마침내 실현되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다!"

후미는 태양을 가리며 소리쳤다.

"나를 이길 자 그 누구냐!"

후미는 파도를 일으키고 번개를 내리쳤다.

그러나 어느 한적한 해안을 거칠 것 없이 달려가던 후미는 무언가에 몸을 부딪히고 멈춰 서고 말았다. 모래 해변가에 서 있는, 이 세상만큼 오래돼 보이는 거대한 화강암이었다. 후미는 자신을 거스르는 그 바위에 화가 났다. 그래서 지금껏 이 세상에서 단 한번도 있어본 적이 없는 거대한 폭풍우를 풀어놓았다. 거대하고 난폭한 파도를 일으켜 바위를 뽑아내 바닷 속 깊이 던져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천사님! 바위가 구름보다 더 강하잖아요? 제가 바위가 되게 해주세요!"

후미는 거대한 바위에 걸린 채 흐느끼며 말했다.

이제 후미는 바위로 변했다. 후미는 바다를 바라보며 가슴을 펴고 말했다.

"이제 누가 감히 나를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겠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힘센 존재야!"

그리고 몇 년이 흘렀다. 어느 날 아침, 후미는 누군가가 자신의 등을 단단한 쇳조각으로 찌르는 것을 느꼈다. 너무 아팠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내 쿵쿵 내리치는 소리가 들렸고, 자신의 몸이 조각조각 떨어져나가기 시작했다. 후미는 극심한 고통과 미칠 듯한 공포에 사로잡혀 몸을 떨며 울부짖었다.

"천사님, 누군가가 저를 죽이려고 해요! 저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갖고 있어요. 저도 그 사람처럼 되게 해주세요!"

"바라는 대로 이뤄지리라!"

천사는 울면서 말했다.

그래서 후미는 다시 석수장이로 돌아오게 되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