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41기 KT배 왕위전' 화난 9단, 노련한 초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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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4강전>

○ . 한상훈 초단 ● . 박영훈 9단

제7보(84~100)=당혹.분노.자책.실망. 흑▲로 반격하는 박영훈 9단의 속이 복잡하다. 강한 초단들 얘기는 들었지만 속으로 웃었다. 한데 막상 이렇게 초단에게 몰리고 보니 보통 사건이 아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뒷목엔 식은땀마저 돈다. 불길한 예감이 꼬리를 문다. 판세는 분명 여기서 뭔가 추격의 단서를 잡지 못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거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던진 혼신의 한 수가 흑▲다.

한상훈 초단의 응수는 10년 묵은 고참처럼 노련하다. A로 먼저 끊지 않고 84로 젖힌 수, 그리고 86으로 끼운 수. 그는 흑이 던진 그물을 매끄럽게 빠져나가고 있다. 흑의 단점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고 있지만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이 느긋함이 흑을 더욱 미치게 만들고 있다.

92로 깨끗이 벗어나자 흑은 두 군데가 바빠졌다. 박영훈 9단은 고심 끝에 93을 선택했는데 이 수는 정수다. '참고도' 흑1이나 B로 두어 백 석 점을 제압하고도 싶다. 실리로도 적지 않다. 하지만 백2를 당하는 순간 흑은 처절히 우그러지고 만다. 백은 2, 4로 관통하며 집을 벌고 있는데 흑은 3, 5가 보여주듯 한 집도 생기지 않는 공배를 두 번 연속 두어야 한다. '공배 연결'은 실패의 증명서다. 프로들에겐 대마 사망 못지않은 괴로움이다.

94로 포위했으나 95의 끼움수가 생명줄이어서 이 흑도 탈출에 성공했다. 비세의 흑에도 장기전으로 이끌 수 있는 한줄기 희망이 보이고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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