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이 쓴 편지] 데이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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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게 지미. 지금쯤이면 내가 자네 딸을 죽인 범인이 아니라는 걸, 내가 자네 손에 죽어 미스틱 리버 밑바닥으로 가라앉아야 할 인간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으리라 믿네. 난 소위 '억울한'죽음을 당한 거지만 영혼이 돼버린 마당에 원망할 생각은 없네.

다만 그때 내가 세상을 떠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 자네가 죽은 딸에게 그랬듯 나도 내 아내와 아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하고 떠난 것이 아쉬울 뿐이네.

생각해 보면 나는 어린 시절 그 일을 겪은 후로는 줄곧 강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바닥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풀 같은 인생을 살아왔던 것 같아. 우리가 하키를 하며 놀던 어린 시절, 미처 마르지 않은 시멘트 블록 위에 이름을 새기다가 경찰을 가장한 성도착자에게 끌려간 그날, 차마 내 입으로 말하기도 싫은 그때 이후 내 시간은 멈춰버렸거든.

쥐가 들끓는 지하 창고에 갇혀 폭행을 당하던 나흘 동안 느꼈던 외로움을 어떻게 다 말할 수 있을까. 차라리 우리 셋 모두 끌려 왔더라면, 누구라도 옆에 있어 줬다면, 누군가 옆에 있다고 믿을 수 있었다면…. 지구상에 나 하나밖에 없는 것 같았던 그 시간들….

그래, 그건 운명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우리 힘으로 스스로에게 벌어지는 일을 통제할 수는 없는 거니까. 하지만 우리가 새겼던 이름들이 시멘트와 함께 굳어가듯 영혼에 새겨졌던 나의 그 상처들은 세월이 흘러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았네. 마치 흡혈귀에게 한번 물리면 영원히 헤어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야.

그래! 난 흡혈귀에게 물려 전염된 흡혈귀였는지도 몰라. 인간의 모습을 하고는 있지만 인간의 땅에 영원히 발을 붙일 수 없는. 난 지구라는 낯선 행성에 떨어진 외계인처럼 그렇게 어른이 됐지만 어른일 수 없었지. 세상에는 매일같이 이런 일들이 신문의 한 귀퉁이를 장식하고 있는데. 세상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는 이런 일들을 겪은 사람들은 나 같은 사람이 되는 걸까. 아니면 내가 너무 약해 빠진 걸까.

난 나만이 그 힘들었던 과거에 묶여 헤어날 수 없었다고 생각해 왔지만, 자네 딸이 살해됐던 사건 때문에 우리 셋이 모이면서 우리 모두가 여전히 그 악몽에 사로잡힌 불쌍한 영혼들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네. 자네들 역시 내가 붙잡혀 가던 차에 "내가 탔더라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결국 그날의 기억이 나로 하여금 또 다른 범죄를 낳고 지미가 나를 딸의 살인범으로 오해하게 만든 거니까.

이제 내가 이렇게 세상을 떠남으로써 지미와 숀 자네 둘의 기억과 영혼만이라도 가벼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라네. 지미, 숀. 우린 한 배를 탔지만 난 끝까지 갈 수 없어 이렇게 도중하차하고 마네.

하지만 자네들은 계속 그 배를 타고 가야 하네. 배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더라도 말이야. 어쨌든 삶이란 것은 그렇게 계속 흘러가야 하는 것 아니겠나. 모든 걸 묻어 버리고 매일 매일 흐르는 저 미스틱 리버처럼 말이야.

이윤정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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