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만의 땅 … 보행자를 위한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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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도심 가로를 걷다 보면 여러 가지 포장된 길을 만납니다. 포장 재료도 다르고 형식도 다릅니다. 특히 건물의 전면공지(前面空地.건물과 보도 사이의 공간)는 보도와 포장 방식이 달라 보행로가 따로 떨어진 것(사진(上))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전면공지는 여유있는 보행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땅 소유주가 건축물을 부지의 경계선보다 안쪽으로 지어 생겨난 공간입니다. 법적으로 건축주의 사유 공간이지만 시민의 보행과 휴식 공간으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공공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지자체가 전면공지를 두는 것을 권장하거나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지자체에 따라서는 전면공지를 할애하는 건축물 주인에게 인센티브를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공간은 대부분 형식적으로만 존재할 뿐 혼잡한 공간으로 방치되기 일쑵니다.

전면공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토지 소유주가 자신의 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주변과의 연속성이나 조화를 고려하지 않고 건물 앞마다 다른 재료와 형식으로 적용합니다. 높이가 다르거나 기울어진 공간을 만들기도 하지요. 결국 시각적으로 흐름이 단절되고 쾌적한 보행이 불가능해집니다. 또 승용차나 오토바이가 이곳에 주차해 보행자는 안전을 위협받기도 합니다.

서울 테헤란로의 어느 전면공지(下)와 보도는 같은 포장재를 사용해 시각적으로 시원하게 열려 있고 보행 또한 편안합니다. 건축주가 제공한 벤치도 있습니다. 이곳은 버스정류장, 가로수와 거리를 두어 보행 공간의 연속성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뉴욕과 파리시는 전면공지에 관한 구체적인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전면공지를 건축물 아닌 보도에 붙어 있는 공간으로 보고 활용합니다. 물론 차량이 주차를 위해 보도에 진입하는 것은 엄격히 통제합니다.

전면공지를 보도의 역할을 하도록 하면 보행이 쾌적해지고 접근성을 향상시켜 주변 상권이 활성화되는 효과도 있습니다. 공지와 보도의 공간적 통합으로 소유자와 시민 모두에게 유익한 상생의 공간이 탄생합니다.

권영걸 한국공공디자인학회 회장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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