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에 "태권"함성 드높인다|부다페스트 최창열 사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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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태권도사범 최창열씨(38).
동구권의 관문인 헝가리부다페스트에서 그만큼 바쁘고 보람찬 하루를 보내고 있는 한국인도 많지 않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우리 나라의 국기인「태권도 보급」이라는 청운의 꿈을 안고 해외로 진출, 올해로 13년째를 맞고 있는 최 사범은 요즈음 그 어느해 보다도 의욕이 넘쳐있다.
일본의 가라테가 널리 알려져 있는 헝가리에서 한국 고유의 태권도를 맨 처음 소개했을 뿐 아니라 차츰 열기가 수도 부다페스트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 몰타 등에서 10년이 넘게 한국의 태권도를 유럽인들에게 가르쳤던 최 사범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들어온 것은 지난해 11월. 공산권이었던 헝가리는 그 동안 친 북한계인 최홍희가 이끄는 국제태권도연맹(ITF)의 사범들이 태권도를 보급해왔으나 90년 한국과 수교되면서 세계태권도 연맹(WTF)의 헝가리 협회가 결성되어 최 사범을 초청한 것이다.
『9년 동안 근거지를 삼아 안정된 생활을 하던 스페인을 떠나 아무 것도 없는 헝가리로 진출하기로 결심하기는 무척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동구권에 한국사범으로는 처음으로 태권도를 보급한다는 긍지로 헝가리협회의 초청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보수는 커녕 기거할 숙소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부다페스트에 온 최 사범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겪었다. ITF소속 사범들은 물론, 일본 가라테의 방해공작이 심한데다 헝가리 사범들과의 마찰까지 겹쳐 스페인이나 몰타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최사범은 당시의 심정을 토로했다.
마땅한 도장이 없어 유도장을 빌려 묵묵히 태권도를 지도하던 최 사범은 올해 초 수련생이 3백명으로 늘어나면서 자신을 갖기 시작했고 때 맞춰 헝가리에 진출한 한국기업들로부터 후원을 받을 수 있어 더욱 활기를 띠게됐다.
럭키금성 측은 최사범과 한국태권도를 소개하는 대형포스터 3천장을 제작, 부다페스트시내 곳곳에 부착했으며 역도인 출신으로「서울 하우스」라는 한국식당을 경영하는 허록사장은 침식을 제공함으로써 최사범에게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특히 허사장은 자신과 친분이 두터운 국제역도연맹(IWF)및 헝가리 올림픽위원회 사무총장인 체육계 거물 토마스 아얀을 통해·경찰과 군에 최사범을 소개했다.
최 사범은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은 경찰간부 40명에게, 월·화·목·금요일에는 헝가리 육군아카데미(육사)교관단 2백명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다.
『헝가리 사람들이 의외로 순박한데다 정이 많아 우리 나라 사람들과 많이 닮았습니다. 태권도에 대한 반응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의외로 좋아 크게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지면서 규율과 질서가 문란해진 헝가리에 태권도를 통해 한국인의 예의와 규범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부다페스트에 개인도장을 여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는 최 사범은 현재 헝가리 정부에 노동 허가서를 신청해놓고 있으며 허가서가 나오는 연말께 부다페스트에 도장을 개설, 본격적인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지난 79년 바르셀로나 태권도 협회의 초청으로 스페인에 진출한 최 사범은 사마란치 IOC위원장의 마을인 산사두르니에 도장을 열고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카탈로냐 지역 태권도 대표팀을 지도, 스페인 대표선수를 5명이나 배출했으며 88년11월부터 90년7월까지는 한국사범으로서는 유일하게 몰타에서 활약했었다. 【부다페스트(헝가리)=임병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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