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페인의 대가(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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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80년대초 아시아에는 네마리의 젊은 용이 있었다. 싱가포르,대만,홍콩,한국을 사람들은 그렇게 불렀다.
그런데 어느날 그중에서 한마리의 용이 하늘에서 갑자기 자취를 감춰버렸다. 너무 기세좋게 날다가 이상이라도 생긴 것일까. 하지만 사실을 알고 보면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하늘을 날던 용이 신나는 비상에 스스로 도취되어 그만 샴페인을 터뜨린 것이다. 추락하는 용. 한국을 두고 사람들은 이렇게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을 아끼지 않던 바로 그 사람들이 말이다.
너무 일찍 터뜨린 샴페인. 최근 통계청의 한 자료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절약의 미덕이 사라지고 허세가 소비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 새삼 샴페인의 대가가 우리 경제를 얼마나 주름지게 했는가를 알려주고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90년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은 5천5백달러 정도인데 소비수준은 국민소득 1만달러가 넘는 일본의 85년 수준과 맞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가계지출은 식비·피복비·주거비·광열비·문화비(교육비·공과금·보건위생비·여가선용비)로 나누는게 관례인데 이 가운데 식비가 차지하는 비율에 따라 생활수준을 가름하는게 이른바 엥겔계수다. 따라서 소득중 식비의 비율이 20%이하면 상류층,20∼40%면 중류층,40%이상은 하류층으로 인식된다.
그런데 이 엥겔계수가 한국은 90년에 32.4%로 소득이 두배 가까웠던 일본의 85년 수치 32.9%와 거의 같은 수준이다. 소득은 아직도 중진국 수준에 머물고 있는데 소비는 선진국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과소비라고 한다.
오늘날 우리나라 소비패턴에는 두가지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고소득자들의 사치풍조와 저소득층의 헤픈 씀씀이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고소득층의 불로소득과 함께 저소득층의 희망과 기대를 빼앗는 경제정책이다. 그리고 도덕성을 잃은 정치판도 책임이 있다.<손기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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