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태 벗지 못하는「문인의 동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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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모해 가는데 20년이 넘도록 구태를 벗어버리지 못하는 동네가 있다. 글쓰는 사람들의 동네다.
글쓰는 일, 곧 문학하는 일은 외롭고 고달프다. 혼자만의 세계에서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를 창출해내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인들 가운데는 자기만의 세계에 남아 틈입해 들어오는 것을 철저하게 금기로 삼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문인들의 세계도 사람 사는 세계인 이상 공동체적인 목표와 방향설정이 없을 수는 없다.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하고, 문학인의 권익을 옹호하며, 회원 서로간의 친목을 도모한다.…』
우리 나라에서 문학단체들이 새로 발족할 때 그 발기취지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대목은 문학단체의 존재당위성과 필요성을 잘 대변한다.
문제는 그와 같은 목적과 취지아래 태동한 문학단체들이 그와는 동떨어진 엉뚱한 불협화음만을 야기한다는데 있다. 그 까닭은 문학단체의 기능이 문학의 테두리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바깥쪽에까지, 곧 문학외적인 곳에까지 연계되고자하는「단체」의 일반적 생리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여러 문학단체들의 행태에서 익히 보아온 바와 같다.
5·16군사혁명직후 혁명정부에 의해 문단이 단일화됐을 때, 비록 그 조치의 밑바닥에는 문화예술계를 하나로 묶어 컨트롤하자는 정부의 의도가 숨어있기는 했지만 분열되어 갈등과 반목을 일삼던 문단으로서는 새로운 전기를 맞은 셈이기도 했다.
그러나 70년대에 접어들어 한국문인협회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문단 파벌간의 맞대결이 잇따라 벌어지면서 문단은 다시 사분 오열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현재 가동중인 문학단체는 모두 20여 개에 달한다. 모두가「문단정치」를 위해 존재하는 단체는 아니라 할지라도 과연 이 많은 단체들이 왜있어야 하는지, 있어도 좋은지에 대해서는 곰곰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문학발전이라든가, 문인의 권익옹호·친목도모에 뜻이 있다면 문학단체란 하나로 족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문학적 이념을 함께 하는데 뜻을 둔다면 동인운동으로 그 기능은 충분히 발휘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문인의 총 결집 체여야 할 문인협회가 활동중인 문인의 절반 가량밖에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든지, 똑같은 장르·똑같은 성격의 문학단체들이 공존한다든지, 한사람의 문인이 여러 문학단체에 소속돼 있는 사실들이 한국문학단체의 현주소를 대변하고 있다.
작년 시조시인협회의 회장선출을 둘러싼 내분에 뒤이어 금년 벽두부터 이사장 선출에 하자가 있느니 어쩌느니 잡음을 일으키고 있는 한국문인협회의 모습은 딱하기만 하다.
그런 가운데 일부지방 문인들은 다가올 지방자치제실시에 발맞춰 문인협회의 시·도지부독립을 요구하고 있다고 들린다.
문인협회는 최근 이사장 선출과정의 문제점을 놓고 청문회까지 벌였다고 하니 어쩌면 그렇게도 정치 판을 닮아 가는지 신기할 정도다.
예술, 특히 문학은 시대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한다. 작품은 물론이지만 생각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생각과 행동이 시대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작품이 낡게되고 마침내는 독자들로부터 외면 당하게 된다.
새 시대에 걸맞은 문학단체의 위상은 무엇인지, 진정 문학을 위한 문학단체의 기능과 역할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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