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집념의 리더십' 드라마는 끝나지 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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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의 협상 타결이라는 한.미 FTA 드라마 1부가 끝났다. 이제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 FTA 협정에 생명을 불어넣는 국회 비준이라는 2부를 새로 준비해야 한다.

노 대통령은 2일 밤 대국민 담화로 그 첫걸음을 시작했다. TV로 생중계된 17분간의 담화에서 노 대통령은 한.미 FTA가 반드시 비준돼야 하는 이유들을 절절히 호소했다. 무엇보다 "한.미 FTA는 정치의 문제도, 이념의 문제도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라며 "민족적 감정이나 정략적 의도를 가지고 접근할 일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특히 노 대통령은 "반대하신 분들의 주장이 우리의 협상력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며 "감사한다"고 해 반대론자들을 끌어안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노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들은 국회 비준을 위해선 반대론 극복이 급선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노 대통령은 외로운 싸움을 해 왔다. 그를 둘러싼 정치적 환경은 낮은 국정 지지율과 임기 말의 레임덕 분위기였다. 미국과 FTA 협상에 착수하겠다는 결정에서부터 최종 타결까지 노 대통령은 집요함과 반전(反轉)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지난해 중반 진보 진영이 등을 돌릴 때 노 대통령은 청와대를 FTA 홍보전의 중심에 서게 했고, 한덕수 국무총리 지명자를 앞세워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한.미 FTA 체결지원위원회도 만들었다. 협상이 막바지 교착 상태에 빠졌을 때는 부시 미 대통령과 직접 전화 담판까지 했다. 청와대 참모들은 이를 '집념의 리더십'이라 말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드라마는 완성되지 않았다. 앞으로는 미국이라는 눈에 보이는 협상 상대보다 훨씬 복잡하고 매서운 국내 여론을 상대해야 한다. 대선이라는 외풍도 견뎌야 한다. 더구나 반대론자들의 대부분은 구여권을 비롯한 과거의 우군들이다.

한.미 FTA의 국회 비준이라는 숙제를 안은 청와대는 그래서 협상 타결 전보다 타결 이후를 더 긴장하며 대비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3월 20일 농.어업인을 상대로 한 업무 보고에서 "협정이 체결되고 나면 이 나라의 FTA를 반대하는 모든 정치인과 직접 토론할 것"이라고 설득과 통합의 정치를 예고했었다. 이 예고대로 청와대는 개헌 제안 때 그랬던 것처럼 한.미 FTA 협정의 당위성을 알리는 범정부 차원의 홍보 계획을 촘촘하게 마련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대국민 특별 담화에 이어 3일에는 범정부 차원의 워크숍을 연다.

청와대는 FTA 홍보전을 ▶대국회 협조 요청 ▶대국민 홍보 ▶농민 등 피해 분야 보완 대책 등 세 가지 축으로 전개할 예정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과 달리 이제부터는 협상의 구체적 결과를 놓고 국익을 지켜냈는지,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되는 협상을 했는지에 논쟁의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며 "토론과 홍보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했다. 이날 국회 인준을 통과한 한덕수 총리 지명자의 역할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국회 비준을 통과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을 전망이다. 10일께 노 대통령은 개헌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그럴 경우 그는 한.미 FTA와 관련해선 진보 진영의, 개헌과 관련해서는 한나라당 등 야권의 거센 반대와 맞서야 한다. 북핵 문제와 관련한 한반도 주변의 외교 환경도 노 대통령이 타고 넘어야 할 파도다. 임기 말에 펼쳐진 국가적 의제들을 제대로 관리해 결실을 볼지 노 대통령의 리더십은 시험대에 올라 있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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