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의 「학문자유」 공방(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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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18일 오전 서울대 사회연구소사건과 관련,연구논문이 말썽이 돼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기소된 권현정 피고인(26·여)의 공판이 열린 서울형사지법 법정.
학문의 자유와 그 한계를 놓고 젊은 검사와 노교수가 치열한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민족경제학계의 태두로 꼽히는 서울대 경제학과 변형윤 교수가 제자의 혐의내용을 순수한 학문적 활동으로 본다는 의견을 밝히기위해 변호인측 증인으로 법정에 선 것.
­우리나라를 신식민지로 보는 것은 잘못된 것 아닌가요.
『경제적으로 대외의존도가 심하다는 면에서 신식민지로 볼 수도 있습니다.』
­북한의 혁명이론과 피고인의 변혁이론도 내용상은 같은 것 아니닙까.
『북한이 우리 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자본주의가 성숙되지 않았다고 인식하는데 비해 권양이 주장하는 이론은 이와 다른 인식을 가지고 있어 같다고 볼 수 없습니다.』
검사와 노교수의 논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자 변호인이 갑자기 제동을 걸었다.
『정치경제학에 대해 석사학위도 없는 검사가 이 분야에서 가장 권위있는 교수를 데려다 놓고 무슨 토론을 벌인다는 것입니까.』
그러나 재판부는 검사의 논리도 존중해야 한다며 토론을 진행시켰다.
­교수님은 학문의 자유라는 것이 계급혁명의 선동까지 포함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학문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연구결과가 최선의 방법으로 이용되리라 믿고 연구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학문의 입장에서라면 혁명까지도 이론적 대안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계속 이어지는 공방속에서 변교수는 권양의 연구가 순수한 진리탐구의 범위에 포함된다고 옹호했으나 검사는 북한의 전략처럼 학문의 탈을 쓴 반국가적인 폭력혁명의 일환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어지는 최후 변론에서 변호사는 검찰을 향해 물었다.
『남북한간 합의서가 교환되는 현상황에서 북한을 여전히 반국가단체로 보아야하나요,아니면 통일을 향해 함께 노력해야할 민족공동체로 봅니까.』
남북한이 통일을 향한 새로운 걸음을 내딛는 시점에서 과연 우리가 북한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 것인지 새로운 이론정립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느낌이 든다.<남정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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