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해외 로밍 '무역역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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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난해 12월 미국 서부로 일주일 동안 출장을 다녀온 30대 회사원 박모씨는 현지에서 자동로밍을 한 휴대전화를 사용했다. 단말기를 바꾸지 않고 바로 통화할 수 있어 편리했다. 현지에서 15차례 이상 전화를 한 박씨가 한 달 뒤 받은 고지서엔 4만6164원의 국제자동로밍 요금이 붙어 있었다. 그가 낸 로밍 요금 중 얼마가 국내에 떨어질까.

자동로밍 수수료 7683원(17%)을 제외하곤 나머지 80% 이상이 해외로 나간다. 국내 업체가 일단 거둔 뒤 해외 통신사에 줘야 한다. 박씨처럼 지난해 해외에 나가면서 로밍을 이용한 사람은 231만8000명으로 이들이 낸 통신요금은 1077억원이다. 이 중 80%인 860억원 정도가 해외 통신사의 몫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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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국내에 휴대전화를 가지고 들어오거나 단말기를 빌려 들어온 외국인 고객은 100만4000명에 그쳤다. 이들 외국인이 쓴 통신요금 중 국내 이동통신업체들이 외국 통신사로부터 받은 돈은 271억원이었다. 결과적으로 지난해엔 590억원가량의 '로밍 역조'가 발생했다.

'로밍 역조'는 물론 해외로 나가는 사람이 국내로 들어오는 외국인보다 많기 때문에 생긴 결과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로 나간 내국인은 1161만 명, 외국인 입국자는 615만5000명이었다. 게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인보다 휴대전화를 더 많이 쓴다.

지난해 해외 로밍 이용자의 1인당 로밍 요금은 약 4만6000원, 들어온 외국인의 사용액은 2만7000원 정도였다. 이는 지난해 해외로 나간 관광객이 쓴 1인당 신용카드 사용액수(686달러)가 외국인의 국내 사용액(407달러)보다 훨씬 많다는 조사 결과(한국은행 발표)와 엇비슷하다. 신용카드나 휴대전화 씀씀이 모두가 큰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3세대 광대역부호분할다중접속(WCDMA) 서비스가 시작되면서 이 같은 역조현상에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에서 WCDMA 방식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한국에 오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일본 최대의 이동통신사인 NTT도코모와 손을 잡은 KTF는 2005년 1만4000명에 그쳤던 일본인 WCDMA 로밍 고객이 지난해 21만6000명으로 급증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국내 3세대 WCDMA 가입자가 17만 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지난해엔 일본인이 한국인보다 국내 WCDMA망을 더 많이 이용한 셈이다. KTF 김석준 글로벌마케팅기획팀장은 "PCS 사업자의 경우 외국에서 잘 쓰지 않는 주파수 대역(1.8㎓)을 쓰고 있어 외국인이 자동로밍을 할 수 없었다"며 "3세대 서비스가 확산되면 국내에서 로밍 서비스를 이용하는 외국인이 지금보다 더 많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김원배 기자

◆ 자동로밍=가입자의 휴대전화 전화번호를 유지하면서 국내에서 쓰던 단말기를 해외에 가져가 이용하는 것이다. 반면 해외 현지에서 통용되는 단말기를 빌리는 것을 '임대로밍'이라고 한다. 임대로밍의 경우 착신 서비스를 이용하면 자신의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외국에서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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