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부총리의 숫자놀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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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투기는 이제 끝났습니다."

국무총리로 내정된 한덕수 전 경제부총리가 2005년 '8.31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한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종합부동산세를 낼 사람은 집 가진 970만 세대의 2%가 안 되기 때문에 나머지 98%는 종부세 걱정을 안 해도 된다"고 장담했다. 2년 뒤인 15일.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같은 장소에서 다른 말을 했다. "8.31 대책 때 2%라고 한 것은 2006년에 그렇게 될 거라는 말이었는데 실제 2.4%였기 때문에 차이가 별로 없었다"고 말했다. 올해 종부세 과세 대상자가 집 가진 세대의 3.9%로 늘어난 것에 대해 그는 "주민등록상 전체 세대인 1777만 세대로 계산하면 2.1%"라며 "8.31 때 발표한 것과 큰 차이가 없다"고 강변했다.

오죽 궁색했으면 부총리가 970만에서 1777만 세대로 분모를 바꿔가면서까지 2%라는 숫자에 집착했을까. 그러나 정부가 발표한 세수 통계만 봐도 종부세가 얼마나 빠르게 늘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지난해 종부세로 거둔 세금은 2005년의 세 배였다. 정부가 지난해 초 예산에 반영했던 세수 증가분보다 30%가 더 걷혔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70%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정부는 추산한다. 아무리 분모를 바꿔본들 종부세가 세금 폭탄이 됐다는 사실을 감추기가 어려워진 셈이다. 이쯤 되면 정부가 할 일은 분명해진다. 집값을 잡지 못해 집 한 채 가진 사람에게까지 고통을 안긴 책임에 대해 사과부터 해야 한다. 그러나 권 부총리는 사과는 고사하고 "세금이 무서우면 강남 집 팔아서 분당으로 이사 가면 된다"고 말했다.

대치동 선경아파트에 살고 있는 박모(55)씨는 "이날 부총리의 말을 듣고는 배신감마저 든다"고 했다. 그는 "여기서 사귀던 사람, 애들 학교, 다니던 교회와 이별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가"라고 되물었다.

언제는 "하늘이 무너져도 집값을 잡겠다"더니 이제 와서 "이사 가라"고 권유하는 정부, 이런 과잉 친절이라면 사양하고 싶다.

김준현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