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태산 돈·사람 걱정(잇단선거 고민하는 재계: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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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수십조원 결국 기업부담/때만되면 여기저기서 당연한듯이 손 벌려/애써 구해논 인력 운동원으로 뺏겨 이중고
『걱정정도가 아니라 야구방망이로 세대쯤 맞은 기분이다. 벌써부터 콜(자금지원요청)이 오는데 단위가 상상이상이다. 이번에는 먼저 선거때와 달리 쥐어짜도 나올까 말까한데 너무들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는 한 그룹 오너의 얘기다.
선거철에 기업들이 갖는 가장 현실적인 고민은 여기저기서 벌리는 손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문제다.
내년에 치를 네차례의 선거에 들어갈 돈이 얼마나 될지 누구도 확언할 수 없지만 적게는 수조원에서 많게는 10조∼20조원까지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같은 돈은 재력있는 후보 본인 주머니에서도 나오지만 상당부분이 결국 「기업부담」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재계는 알고 있다.
최근에 청와대측이 「기업인들에게 절대 손을 벌리지 말라」고 했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믿는 기업인은 없다. 다만 거래가 보다 음성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있겠구나하고 생각하는 정도다.
지난해 정치자금법이 개정되면서 정당후원회의 경우 중앙당은 물론 지역구 후원회까지 조직돼 있고 웬만한 기업들은 대개 참여하고 있어 「공식적」인 부담도 늘어나 있다. 『뿐만입니까. 진짜 걱정은 개인적으로 여기저기서 손을 벌려오는 것이에요. 사실 기업입장에서는 정치자금을 내는 것도 일종의 「투자」인 셈인데 누구를 괄시할 수 있겠어요.』
속고민은 더 있다.
『사업하는 사람이란게 힘센 사람을 붙잡고 싶은 것인데 요즘은 누가 센지도 알 수 없어요. 진짜 센 사람이 아니면 돈을 주어봤자 받고는 그만인데….』
『현재로선 도무지 알 수가 없잖습니까. 여당도 줄서야 할곳이 여러 곳이고 5공세력 얘기도 나오고…. 상황은 지난 87년보다 훨씬 복잡한 양상을 띨 것 같아요.』
기업이 울며 겨자먹기로 돈을 대는 것만은 아니다. 이같은 「생명보험」 성격의 자금부담외에 적극적인 「투자」 형태의 자금지원도 있다.
「돈걸 곳」이 마땅찮다는 재계의 고민은 일반국민들로서야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정경유착」이 낯설지 않은 우리 상황에서는 그것도 「현실」이다.
지방의 중소기업들은 선거철만 되면 돈때문에 이중고를 겪는다.
『서울 중소기업들이야 대기업이란 방패막이 있어 정치인들의 요구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지방 중소기업들은 여야후보 모두로부터 직접적인 타깃이 될 수 밖에 없다.』 돈이 비정상적으로 흐르다보니 정상적인 자금조달은 더욱 어려워 진다.
『지난번 지방의원선거때 4천여만원을 대출받기 위해 공장부근 3천여평짜리 땅문서를 갖고 은행을 돌아다녔으나 결국 대출을 받지못했어요. 내년에는 선거자금도 더 풀릴 것이고 정부는 또 통화를 죈다할텐데 이러다간 줄줄이 부도사태가 나지않을까 정말 걱정이에요.』 한 중소제조업체 사장의 하소연이다.
선거철만 되면 기업이 안는 또 하나의 고민은 사람구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비용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사람이 자꾸 빠져나가 올해초 50대이상 중년층 6명을 월급 45만원에 고용했었는데 지난 지방의원선거때 모두 떠나버렸어요. 선거판에서 하루 4만원을 받는다나요.』한 건축자재업자의 얘기다.
『그나마 부족인력을 보충해오던 노인·주부인력 등이 선거철에 대거 빠져나갈 것으로 보여 영세 중소업체들은 큰 타격이 예상된다』는 중소기협중앙회 한 간부의 분석.
사람구하기가 다소 나은 대기업도 고민은 많다.
『섬유의 경우,끝마무리 때문에 항상 탈인데 선거를 연거푸 치르고나면 그나마 더 엉망이 될까봐 걱정이다. 노사관계도 그렇고….』
『현장일손을 구하기 힘들어 질 것은 뻔하다. 건설업체에서 대책이라면 건축방식을 조립식으로 바꿔 건설인부들을 줄이는 것이다.』
선거가 이렇듯 경제 악순환의 신호탄이 돼서는 안된다.
민주국가에서 선거를 치르지 않을 수는 없다. 문제는 선거의 폐해를 줄이기위한 공정한 규칙을 만들고 이를 지켜나가는 것이다.
이는 정치권의 반성을 가장 필요로하지만 기업·국민들도 그같은 반성대상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박신옥·오체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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