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메이커 DJ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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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지도자를 뽑는 대선에서 '블루칩' 대접을 받는 과거의 지도자가 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이다. DJ의 동교동 자택은 문전성시다. 그동안 범여권뿐 아니라 한나라당 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손학규 전 경기도 지사가 줄지어 그를 찾았다. 11일엔 대선 출마를 노리는 한명숙 전 총리가 퇴임 첫 행사로 동교동을 찾았다. 세 시간을 만났다.

DJ는 한편으론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한다. 다른 편으론 "단일후보를 내라"는 메시지를 범여권에 공개적으로 보내고 있다. 그는 이날도 한 전 총리에게 "범여권의 흩어진 힘을 모으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과 탈당파, 민주당이 방법론에서 이견을 보이면서도 결국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공감대를 나누고 있는 데에는 DJ의 이런 발언이 영향을 크게 미쳤다.

동교동계 가신들의 움직임도 덩달아 빨라지고 있다. 최근 사면된 권노갑 전 고문의 자택은 범여권 인사들의 '사랑방'이 되다시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열린우리당.탈당파.민주당 할 것 없이 권 전 고문을 찾아가 어떻게 통합을 진행할 것인지를 상의한다"고 소개했다. 박지원 전 비서실장도 범여권 인사들과 접촉이 잦다고 한다.

◆특정 주자.정책 언급 때 파장=DJ가 상한가를 치는 것은 그가 여전히 호남과 민주화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지역 및 보혁 대결이 예상되는 대선전에서 그는 '현찰'인 셈이다. 정치권은 그가 특정 주자를 대놓고 지지하지는 않더라도 '누구는 안 된다'는 배제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양형일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이 고건 전 총리에 대해 부정적으로 언급한 뒤 고 전 총리의 불출마 선언이 나오지 않았느냐"며 "DJ가 주자나 정책을 특정해 언급할 경우 크게 영향을 줄 것"이라고 했다. 남북 정상회담이 거론되는 등 개선 기류를 보이는 남북관계 역시 포용정책을 강조해 온 DJ의 발언권을 높여주는 요소다.

◆"박근혜, DJ 비판 안 해"=이런 점 때문에 한나라당 내에서도 DJ와 연대설이 나온다. 박근혜 전 대표 측이 적극적이다. 핵심 참모는 "박 전 대표는 DJ를 비판한 적이 한번도 없다"며 "궁극적으로 'DJ-박근혜 연합'을 염두에 두는 게 아니겠느냐"고 운을 뗐다. 박 전 대표가 최근 "대선 전이라도 남북 정상회담이 가능하다"고 한 것도 DJ를 의식한 것이란 시각이 있다.

4월 25일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전남 무안-신안 지역에 무소속 출마를 결심한 DJ의 차남 홍업씨가 12일 목포 지역을 찾아 사실상 선거 행보를 시작한다. 주소지도 무안으로 옮긴다. 하지만 광주.목포의 일부 시민단체는 "비리에 연루돼 실형을 선고받은 김씨의 출마는 호남을 무시하고 자존심을 짓밟는 처사"라며 반대한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이번 선거가 홍업씨에 대한 연합공천을 저울질하는 범여권이나 출마를 묵인하는 DJ에 대한 민심을 읽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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