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풍」식 문화에서 생활문화로(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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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천5백여 출판사가 참여하고 있는 서울 도서전이 올림픽공원에서 화려한 개막과 함께 열리고 있다. 해방 이후 발간된 도서종수가 50만종이라면 어떤 문화선진국에도 뒤지지 않는 외형적 성장이라 할 수 있고 연간 발행부수 2억4천권,5천여 출판사의 숫자만으로 우리는 세계 10위권안에 드는 출판문화의 선진국이다.
그러나 가을이면 독서주간을 설정하고 해마다 독서캠페인이 벌어지고 있지만 한달에 한권 이상 책을 읽는 사람은 국민의 39%에 불과하다는 한심한 통계가 있을 뿐이다. 책을 읽는 사람이라 해도 한달 평균 1.21권에 불과하고 그나마 독서의 질도 의문이다.
한나라의 문화수준을 저울질할 대표적 수치로서 출판문화의 수준은 대외화내민의 문화풍토를 단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겉모양은 번지르르 하지만 알맹이는 텅빈 껍데기 문화의 단적인 예를 우리는 문화의 달을 맞으며 다시금 확인하는 것이다.
문화사업 부문중에서 가장 앞서있다할 출판부문이 이렇다면 타분야는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예술문화가 사업으로서 자리잡고 있는 분야라면 그나마 출판일뿐이다. 연극·미술·음악·춤 등 어떤분야도 문화사업으로서 제자리를 차지하지 못한채 의존적 기생적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게 우리의 부끄러운 예술문화 풍토다.
예술문화가 이처럼 독자적 위치를 확보하지 못하고 의존적 기생적 형태를 띠게 될때,예술문화가 국민들의 사랑과 성원속에서 성장하고 생활화 되지 못할때,그 문화는 관제화 되고 전시화에 치우치며 왜곡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미 우리는 이러한 문화의 관제화·전시화의 왜곡된 현상을 5공 시절의 국풍바람에서 확인한 바가 있고 최근 관제화·전시화의 조짐이 새롭게 일고 있는 현상을 우려깊게 경계한 바도 있다.
그 단적인 예가 1백50여명이라는 대규모 문화사절단을 유엔가입 경축을 기념키 위해 미국·동구에 파견한 일이고 지난주말 올림픽 개최와 유엔가입을 기념키 위해 서울시가 벌인 대규모 기념축제 였다고 본다.
물론 문화의 국제화 추세와 한국 외교의 숙원사업이 타결된 시점에서 문화사절단 파견을 굳이 관제화와 전시용이라는 부정적 측면에서만 볼 수 없다 치더라도 서울시가 벌인 주말의 축제행렬은 문화의 관제화와 전시화의 부활조짐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문화정책의 주무부서인 문화부가 문화의 달을 맞아 벌이고 있는 문화의 생활화 운동,「문화의 바람개비」 캠페인에 우리는 주목코자 한다. 문화의 생활화를 위해 문화부가 실천안으로 제시한 방안은 문화의 인간화와 인접화로 요약된다.
이 말을 뒤집으면 문화의 관제화·독점화·전시화를 지양하고 생활속에 가까운 문화,관주도가 아닌 민간주도의 문화풍토를 위해 정부는 주도가 아닌 지원,일보계층에 국한된 과소비적 속물문화가 아닌 일상속의 생활화된 문화습관의 실천을 뜻한다.
문화부 발족이래 전시홍보적 기능에 치우쳤다는 비판을 받았던 초기의 정책형태에서 문화의 생활화 운동은 진일보한 문화정책의 표현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그러나 이 정책이 다 가시적이고 실천적 효과를 올리기 위해선 다음 몇가지 사항이 보다 확실하게 지켜져야 한다고 믿는다.
먼저 무엇을 주도하고 무엇을 지원할 것인가에 대한 정책의 우선이 분명해야할 것이다. 전통문화의 보전과 문화공간의 확대,그리고 문화의 국제화 부분에서는 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야 하고,이를 위해선 보다 과감한 예산확보와 투자가 이뤄져야할 것이다. 그러나 예술문화의 발전을 위해선 정부의 기능이란 주도가 아닌 지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그 다음 의존적이고 기생적인 오늘의 예술문화를 독자적 위치로 발전시키기 위해선 예술문화인들의 관제문화 편승풍조도 이젠 불식될때도 된 것이다. 관주도형 경축행사를 빌미삼아 전시문화를 사업화 하는 최근의 작태는 문화예술의 자기위상을 스스로 해치는 속물적 문화상인의 추악한 모습을 드러낼뿐이다.
끝으로 문화의 생활화란 국가정책으로 이룩될 타의적 강압적 성격의 행사가 아닌 우리 스스로가 찾고 아끼고 소중히 간직할 생활의 일부인 것임을 우리는 잊고있다는 사실이다. 한심한 독서풍토를 개탄하기에 앞서 내 스스로가 지금 당장 서울 도서전을 찾거나 근처 서점문을 열고 들어갈 일이다.
문화정책이 바로 서로 문화담당 주체가 제역할에 충실하며 우리 모두가 문화를 소중히 여길때 문화의 달이라는 비문화적 캠페인도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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