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모 교수의 예루살렘 통신] "장벽으로 테러 막겠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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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예루살렘에서 안식년을 지내고 있는 건국대 히브리어과 최창모(사진)교수가 이스라엘이 쌓고 있는 장벽을 목격하고 그 소감을 보내왔다. 이스라엘 측은 "팔레스타인인의 자폭테러를 막기 위해 장벽을 쌓는다"고 주장하는데 팔레스타인 측과 국제기구 등은 비인권적인 처사라고 지적한다.

예루살렘 에콜 비블리크의 몇몇 프랑스 사제 교수, 학생들과 함께 최근 6세기 비잔틴 수도원을 찾아 요르단강 서안 광야의 유대 정착촌에 다녀왔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른바 '보안장벽'을 처음으로 목격했다.

동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마을인 아부디스에서 본 이 장벽은 높이가 5~6m나 돼 멀리서도 뚜렷하게 보일 정도였다. 시야를 가로막은 거대한 장벽에 일행은 모두 말을 잃었다. 대형 크레인이 움직이며 공사 중이었고 중무장 이스라엘 군인이 버티고 있어 가까이 갈 수도 없었다. 콘크리트 장벽은 온통 회색이었다. 중동의 암울한 미래를 상징적으로 말하는 듯하다.

마을 한복판을 가로지른 장벽은 현재 3백~4백m 정도만 세워져 있다. 장벽 사이에 비좁은 통로가 있는데 팔레스타인 어린이.부녀자.남자들이 그 곳을 비집고 지나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장벽 설치가 완료돼 통로가 막히면 팔레스타인인들은 친척이나 이웃과도 이스라엘군의 허락을 받아 검문소를 지나야만 만날 수 있게 된다. 엄청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이는 절대로 '보안장벽'이 아니다. 이는 '분리장벽'이다. 이미 장벽에 둘러싸인 요르단강 서안지역의 칼킬리야는 게토(유대인 격리지구)와 다르지 않고, 제닌은 이미 굴라그(소련의 정치범 집단수용소)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정부는 요르단강 서안지구 전체를 유대인 구역과 구분해 총 길이 수백km의 장벽을 쌓을 것이라고 한다.

이스라엘은 언제나 안보를 최우선 순위에 둔다. 이해하고도 남는다. 팔레스타인 측의 자폭공격 때문에 매일 타는 버스도 불안하고, 자녀들의 귀가가 조금만 늦어도 걱정이고, 군대간 자녀와는 하루에도 수차례씩 안부전화를 주고 받는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인의 공격을 막으려고 장벽을 쌓는다고 했다.

하지만 역사를 보라. 만리장성, 베를린 장벽,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 장벽 등 역사상의 그 어떤 벽도 안전을 보장하지 못했다. 안전과 평화를 얻으려면 둘 사이에 벽이 아닌 신뢰부터 먼저 구축해야 할 것이다.

최창모 현 예루살렘 히브리대학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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