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벼랑 끝에 선 대학로 소극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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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저렴한 대관료를 낼 수 있는 소극장이 절실합니다. 우리 같이 가난한 극단이 어디 가서 한달에 1천5백만원이나 되는 대관료를 지불하며 연극을 올리겠습니까."

서울 대학로에는 25개 안팎의 소극장이 있다. 그 중 시설과 위치가 좋아 극단이 선호하는 소극장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바탕골 소극장과 학전블루 소극장도 여기에 속한다. 이 두 극장은 다른 소극장보다 대관료가 반 정도로 싸 대관 경쟁률이 10대1에 달한다.

올해 말로 이 인기 소극장이 사라질 처지에 놓이자 연극 관계자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연극협회가 정부 지원금 6억원을 받아 3년째 운영해 온 바탕골 소극장은 올해 말로 폐관된다. 건물 주인이 바뀌면서 월세를 높게 불러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내주게 됐다. 협회는 대학로의 다른 소극장을 급히 알아보고 있지만 아직 마땅한 극장을 찾지 못하고 있다.

문예진흥원이 2년 전부터 운영해 온 학전블루 소극장도 내년도 예산을 따지 못해 원래 운영권자인 극단 학전으로 되돌아갈 모양새다. 민간이 운영하게 되면 이 극장의 대관료는 지금보다 세배 정도 뛸 것으로 보인다. 극단 학전 측은 "건물주에게 한달 월세를 1천8백만원 이상을 내야 하기 때문에 대관료 조정이 불가피하다"며 "하루 대관료를 70만~90만원은 받아야 최소한의 극장 유지가 가능하다"고 토로했다.

앞으로 불투명한 운명 앞에서 바탕골 소극장과 학전블루 소극장은 내년 대관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는 등 기능 정지 상태다. 이러다간 소극장을 구하지 못해 "에이, 연극 안 올리고 말지"라며 등돌릴 극단도 나타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연극인들은 이번 사태를 보며 "관이나 협회의 소극장 지원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소극장이 들어선 건물주에게 세금 혜택을 준다거나 땅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장소에 극장을 건립하는 등의 아이디어는 쏟아지지만, 정작 관이나 협회는 의지가 없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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