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방황하는 남자들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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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중학생 딸, 고등학생 아들을 둔 나는 요즈음 심한 외로움을 탄다. '가질 것 다 가진 사람이 무슨 행복에 겨운 소리냐'고 반문할 분도 많겠지만 그것은 잘 모르는 말씀이다. 나의 외로움은 철저한 아내와 딸과 아들의 집단 따돌림에서 시작된다. 아내 등쌀에 대전('대치동 전세 살다'의 줄임말)으로 이사간 지 어언 7개월-. 아내의 계산대로 아이들은 학원과 학교를 오가며 힘들고 고달픈 젊은 날의 고통을 잘 감내하고 있다. 그 숨막히는 와중에서 나는 아내의 엄명을 받았는데 될 수 있으면 아이들 공부 분위기를 위해 '집에 늦게 오고' '일요일은 아침 일찍 당신 좋아하는 고향집을 향해 홀로 떠나라'는 것이다.

모 공기업의 중견간부인 나의 친구도 일요일이면 예외없이 집을 나와 홀로 떠돈다. 조조 영화관.책방.선술집.등산 등으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물론 친구도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는 단란한 가족끼리의 오붓한 시간이 많았다. 그런데 아이들이 입시생이 되면서부터 더 큰 희생자인 아내가 협조를 부탁한다며 자신을 집 밖으로 내몰았다. 대입 수능시험을 보는 수험생이 연 70여만명이 된다고 하니 집 밖으로 내몰린 이들의 아빠도 줄잡아 70여만명이다. 어디 이뿐이랴. 자녀 교육의 영향을 안 받을 수 없는 전체 고등학생의 아빠와 아이들을 외국에 보낸 기러기 아빠까지 합하면 갈 곳 없는 남성은 수백만명이 훌쩍 넘는다는 통계다. 이 땅에는 지금 수백만명의 남성이 물리적이든 아니든 집 밖에서 가족과 유리된 방황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전통 사회에서는 남자의 자리가 분명했다. 시골에서 자란 나의 경우 아버지의 공간은 사랑채였다. 사랑채는 안채의 주인인 어머니의 보이지 않는 시선 속에 통제된 아버지의 건강한 일탈 공간이었다. 친구들이 찾아오고 어머니의 주안상이 흥을 돋우며 때로는 음담패설이 오갔어도 남자들의 일탈은 아내와 자식을 의식한 절제된 것이었다. 도시화와 정보화 사회로의 급속한 변화는 남자들에게 고유의 공간을 빼앗아 갔다. 아파트로의 가옥구조 전환은 안채.사랑채의 구분을 없앴고, 남자가 친구를 집에 초대한다는 것은 '간 큰 남자' 시리즈에서나 볼 수 있는 희귀 사례가 됐다. 여기에 과열 교육과 입시 광풍까지 가세해 이 땅의 수백만 남성을 가정이라는 공간으로부터 퉁겨져 나가게 했다. 집밖으로 내팽겨쳐진 남자들의 갈 곳은 뻔하다. "밤새 술 마시고…. 하루 속히 가족과 합치지 않으면 얼마나 더 망가질지 모르겠어요." 어느 일간신문 인터뷰에 인용된 기러기 아빠의 심경은 가족이라는 건강한 울타리를 잃어버린 세상 남자들의 절박한 위기감을 말해주고 있다. 사랑채를 없애고 자녀 교육 때문에 남편을 집 밖으로 몰아낸 사회는 또 다른 남자들만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거리에 비일비재한 룸살롱 등 유흥업소는 정상적으로 일탈하지 못한 남자들의 비정상적 탈출구다. 이런 공간에서는 절제가 있을 리 없다. 암사자와 새끼들을 경쟁자에게 빼앗긴 수사자의 절망과 광폭함처럼 남자들이 지금 집 밖에서 펼치는 불안.초조.광기의 활극은 암세포처럼 룸살롱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도처로 옮겨다니며 세상을 어지럽힌다. 말초적 쾌락 속에서 부수고 물어뜯고 등떠밀어 죽이는 모든 사회혼란과 갈등의 원인 속에 바로 이 쫓겨난 남자들의 허무주의와 방황이 한몫하고 있다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자식을 위한 한낱 유전적 숙주로서의 삶을 자초한 이 땅의 모든 남자들, 그대들도 그대들만의 자리를 찾아야 할 때다. 알아야 할 것은 그대들이 이토록 고군분투하는 배경에는 수직과 폐쇄로 얼룩진 가부장제의 독선적 가치를 아직도 부여잡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봄날은 갔다. 이제 자녀의 학습 지도.논술토론, 아내와 함께 설거지.마사지 하기(?) 등 눈높이를 끊임없이 낮추며 살아야 할 때다. 어찌됐든 가족이 함께 살아야 나라가 조용하다.

홍사종 경기도 문화예술회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