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적 운동으로 아동문화 창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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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15일 타계한 청사 조풍연씨는 박학 다식한 서울 토박이였다. 원만한 성품과 폭넓은 교양으로 어느 분야에서든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팔방미인이면서도 「한양양반」으로서의 체모를 잃지 않았던 이 시대의 보기드문 유복한 선비였다.
38년 연희전문 문과를 졸업한 청사는 그해 매일신보 간에 기자로 입사, 40년 문예지 『문장』편집인, 45년 을유문화사 주간, 54년부터 한국일보 문학부장·논설위원 등을 거치면서 39년간 언론계에 몸 담아왔다.
특히 60∼73년 어린이신문인 「소년한국」주간을 맡으면서 청사는 어린이 보호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여 아동문학으로, 또는 실천적 운동으로 아동문화를 창출하는데 앞장섰다. 『노래의 날개 위에』 등 동화집과 소년소설 13권을 남긴 청사는 어린이운동단체인 색동회회장으로서 어머니 동화구연대회 등을 개최하면서 동화의 보급과 함께 성인들에게도 동심을 잃지 않게 했다.
34년 『삼사문학』동인으로 수필을 발표하기 시작한 청사는 6·25이후 많은 수필을 발표, 전쟁과 급속한 근대화조치에 의해 중심 못 잡고 흔들리는 민족고유정서, 또는 우리민족의 평균적 교양을 잡아주려 노력했다. 특히 그는 서울토박이로서 6·25 이후 피난민과 농촌인구가 서울로 몰려 「8도 공화국」이 된 서울의 고유 문화·풍속을 구수한 필체로 퍼 올린 수필집 『청사수필』『명상하는 서민』등 4권을 남겼다.
둥글둥글한 얼굴과 웃음으로 항상 몸이나 마음이 청춘이었던 청사는 사회일선에서 물러난 말년에도 신문·방송언어 중 잘못 쓰이고 있는 부분을 조사·연구한 『국어순화에 관한 연구조사』1만3천장 분량을 집필하는 의욕을 보였다. 우리민족의 평균교양을 지키기 위한 다방면의 활동으로 청사는 방송문화상·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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