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장|고학력일수록 공동체 의식 낮다|김자혜·김미숙 덕성여대 교수 논문 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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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한국 가정에서는 아버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공동체의식보다는 오히려 가족주의 의식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또 아버지의 공동체의식이 강한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이 그렇지 못한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에 비해 더욱 가족 이기주의가 강하게 나타난다는 학술 논문이 발표돼 주목을 끌고 있다. 이것은 결국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공동체의식이 강해질 것으로 보고 있는 일반의 추측을 크게 뒤집고 있으며 사회공동체적인 의식이 강한 아버지도 자녀 양육에는 가족주의가 앞서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여성 한국 사회 연구회 (회장 이효재)가 22일 이화여대에서 개최한 「부모와 자녀 관계」를 주제로 한 학술 발표회에서 덕성여대 김자혜·김미숙 교수가 발표한 「아버지의 역할 수행과 자녀의 학업 성취 및 의식」이란 주제 논문에서 지적됐다. 이 논문은 국민학교생 3백84명, 고교생 2백50명의 아버지를 상대로 조사한 내용을 중심으로 쓴 것이다.
이 논문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아버지들은 대부분 『평범하게 자기들의 일에 충실하면서 가정을 꾸려가고 자녀를 잘 키우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성공』이라고 보는 소시민적이면서도 가족 이기주의적 성향이 강했다.
또 아버지들의 72% 정도가 개인의 노력과 자질·특성에 의해 사회내에서의 계층 이동, 즉 성공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었으며 국민학생 자녀를 둔 아버지의 74%와 고교생 자녀를 둔 아버지의 83.2%가 공부를 갈 하는 것이 성공과 큰 관계가 있다고 보고 있었다.
이 사실은 우리 사회가 자녀 교육의 최우선을 성적 관리에 두고 있고 아버지와 자녀와의 관계는 철저하게 성적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어두운 면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 논문은 산업화·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가족과 직장이 철저하게 분리돼 아버지의 가장 큰 역할은 「생계 유지자로서의 몫」이 강조되었고 종래 가장으로서 담당했던 「자녀의 교육자」 역할은 포기되다시피 해 방관자로 전락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아버지들의 60% 이상이 『국가나 사회의 발전보다는 내 가족의 안녕이 더욱 중요하다』고 응답해 강한 가족 중심의 사고 방식을 갖게 됐다고 이 논문은 밝히고 있다.
한편 아버지들의 공동체 지향 의식 조사에서는 중학교 졸업 이하의 경우가 고학력 아버지보다 공동체의식이 강하게 나타났고 연령별로는 고령자들이 더욱 강했다.
이같은 조사 결과는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고학력자들이 오히려 공동체의식이 낮은 사실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가족내의 아버지 역할에 대한 조사에서는 학력이 높은 층일수록 역할이 커지고 있었으며 자녀의 지적 능력 기여도에서도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고학력자들이 높았다.
그러나 이는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에서 얻을 수 있는 생활의 여유, 즉 재력을 자녀 교육에 투자함으로써 자녀들의 성적을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계층 출신 자녀들보다 높게 해주었을 뿐 아버지 자신들이 기여한 것은 아닌 것으로 풀이된다.
이같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이 논문은 한국의 아버지들은 뿌리깊은 가족주의, 또는 가족이기주의에 젖어 있기 때문에 교육 수준이나 사회·경제적 지위가 사회공동체의식의 성장으로 연결되지 않으며 사회공동체 성향이 비교적 강한 아버지들도 자녀의 교육은 사회공동체 전체의 요구보다는 가족주의에 더욱 충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석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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