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으로 치닫는 「광역」/유권자들 금품요구에 후보투신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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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사전선거운동·공천잡음 등으로 초반부터 타락상을 보인 광역의회 의원선거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타락현상이 극심해지고 있다. 이러한 타락상은 각 정당이 선거법을 어기며 금품을 돌리는데도 원인이 있지만 유권자 또는 득표브로커들이 후보들에게 표를 몰아주겠다며 향응·관광·모임비용 부담을 공공연히 요구해 벌어지고 있다.<관계기사 3,5,23면>
이에 따라 돈마련에 어려움을 겪은 후보가 견디지 못해 격분,투신하거나 후보를 사퇴하는 일이 빚어지고 있다.
이같은 사례는 특히 대도시 및 중소도시의 격전지일수록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12일 오후 5시40분쯤 경남 울산시 제1선거구에 출마한 민주당 김수용 후보(39·소설가)가 유권자의 금품요구에 격분,복산동 353 선거사무실 2층 창문에서 5m 아래로 뛰어내려 팔과 다리가 부러지고 척추를 다치는 중상을 입고 인근병원에서 치료중이다.
김씨와 함께 있던 선거운동원·친구 등 4명에 따르면 오후 3시쯤 야유회 찬조금등을 요구하는 전화가 잇따라 걸려오자 김씨가 『알만한 사람들이 이런 짓을 한다. 이런 풍토에서는 더이상 선거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며 사무실 집기를 부수고 실내에 있던 화분 등을 내던져 창문을 깨뜨렸다.
김씨는 이어 복산파출소 경찰관 2명이 소란을 조사키 위해 사무실로 들어서자 창문을 열고 뛰어 내렸다는 것이다.
김씨는 지난 주말에도 향응을 요구하는 유권자를 피해 인근 절에 가 있었던 적도 있다.
김씨는 선거등록후 자기집을 전세로 내놓은 뒤 이를 담보로 1천만원을 융자받아 선거운동을 해왔으며 이날 투신직전 책상위에 『그동안 공명선거를 하기 위해 노력해 왔으나 공공연히 금품등을 요구하는 풍토가 나를 구석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더이상 버틸 수가 없을 것 같다』는 쪽지를 남겼다.
경남 김해시 제2선거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김재봉씨(55·경남장의사 대표)도 10일 유권자들의 금품요구등에 회의를 느끼고 사퇴했다.
김씨는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광역의회선거에 출마했으나 타락선거등으로 혼탁해진 상황에서 도의원의 책임을 다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돼 사퇴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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