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Blog] 골든글로브상 권위의 보증인은 '회계법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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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가 주최하는 이 시상식이 처음부터 지금처럼 화려한 행사로 치러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시작은 1943년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 격렬하게 치러지던 순간이었죠.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외신기자 8명이 수상자들을 불러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상장을 나눠주는 단출한 행사를 엽니다. 수상 부문도 작품.남우주연.여우주연.남우조연.여우조연 등 5개뿐이었죠. 이듬해에는 호텔에서 고급스럽게 행사를 열긴 했지만 예산이 부족해 테이블에 올릴 꽃을 직접 가져오기도 했답니다. 황금빛 지구본을 필름으로 감싼 골든글로브 트로피는 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46년에 만들어졌습니다.

당시는 할리우드에서 외신이나 해외 시장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별로 높지 않던 때였습니다. 29년 시작된 아카데미 시상식에 비해서도 한참 뒤졌죠. 그럼에도 현재의 위상을 정립할 수 있었던 것은 60여 년에 걸친 꾸준한 노력의 결과입니다. 영화와 TV 드라마를 포괄하는 방법으로 오직 영화를 대상으로 하는 아카데미와의 차별화에도 성공합니다.

골든글로브의 역사에는 재미있는 해프닝도 많이 있었습니다. 말런 브랜도는 73년에 '대부'로 남우주연상에 선정됐지만 수상을 거부합니다. 베트남 전쟁 등 미국의 '침략주의와 인종차별에 항의하려고'그랬다고 하네요. 70년 영화 'Z'의 제작자들은 작품상이 아니라 외국어영화상에 선정된 것에 불만을 품고 트로피를 받지 않았죠. 미국에서 만든 영화라도 대사가 주로 외국어로 이뤄지면 외국어영화로 분류하거든요. 그런가 하면 98년 TV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은 크리스틴 라티는 목욕을 하다가 수상 소식을 듣고 끌려나오기도 했습니다. '대부3'는 91년 7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지만 하나도 수상하지 못하는 진기록을 세웁니다.

이번에 골든글로브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이들이 심사의 공정성에 대해 완벽을 추구하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외신기자협회의 회원들이 투표를 하면, 투표지는 고스란히 외부 회계법인에 넘어갑니다. 회계법인은 철저한 보안 속에 투표 결과를 집계해 발표 직전 사회자에게 봉투를 넘겨주죠. 협회의 필립 버크 회장마저 공식 발표 이전에는 결과를 알 수 없다고 하네요. 협회의 한 임원이 철저한 보안을 약속하면서 수상자 명단을 미리 달라고 했지만 한마디로 거절당했답니다. 그러니 수상자 선정을 둘러싸고 로비가 이뤄질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겠죠. 시상식의 가장 큰 권위는 역시 공정성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LA=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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