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임제 개헌 정치권 '외면 기류'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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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과 민주당.민주노동당.국민중심당 등 야 4당은 노 대통령이 개헌안을 설명하기 위해 마련한 11일 청와대 오찬 회동에 불참키로 했다. 본지를 비롯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다음 정권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높게 나온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정당 관계자들은 전했다.

노 대통령은 10일 임채정 국회의장, 이용훈 대법원장, 한명숙 총리, 고현철 중앙선관위원장을 청와대로 초청해 전날 제안한 개헌안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발의 전 준비기간을 포함해 4개월이면 되기 때문에 지금도 (개헌을) 두 차례 할 시간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합당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정략적이란 주장이 나오는데 개헌은 어느 누구의 손해도 아니다"며 "필요한 것을 반대하는 쪽이 오히려 정략적"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11일엔 각 당 지도부와 만날 계획이었다. 그렇지만 한나라당에 이어 10일 민주노동당.민주당.국민중심당이 차례로 불참을 통보하는 바람에 회동 성사가 불투명해졌다.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이날 "개헌을 다음 정권에서 하자는 주장은 실질적으론 하지 말자는 것"(김근태 의장)이라며 지원에 나섰다. "갑론을박을 해서라도 꼭 개헌해야 한다"(서갑원 의원), "음모가 있다면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의 반대를 예상했을 텐데, 반대하면 오히려 걸려드는 게 아니냐"(김영춘 의원)는 옹호 발언도 나왔다.

하지만 같은 당 이상민 의원은 보도자료를 내고 "5년 단임제와 잦은 선거 때문에 국정운영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노 대통령의 주장은 시험 성적 나쁜 학생이 필기구를 탓하는 억지나 다름없다"며 반대 활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이 반대하면 어차피 안 된다"(천정배 의원), "노 대통령의 진정성이 받아들여지거나 여당이 일사불란하게 동력이 돼 줄 상황이 아니다"(양형일 의원)는 의견도 고개를 들고 있다.

통합신당 추진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까지 겹치면서 열린우리당은 "개헌과 전당대회(통합신당 추진)라는 두 트랙을 함께 돌리겠다"는 입장을 정했다. 개헌 관철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과는 차이가 나는 것이다. 당 관계자는 "개헌과 통합신당이 제로섬은 아닌 만큼 당은 청와대 측 대응에 따른 여론 추이를 지켜보며 차분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전날까지 "검토해 보겠다"던 민주노동당은 이날 "노 대통령의 제안은 정략적이고 부적절하며 시기적으로도 맞지 않아 반대한다"(박용진 대변인)고 못박았다.

"찬성할 수 있다"는 민주당은 '열린우리당 탈당, 거국중립 내각 구성'이란 조건을 걸었다.

한나라당은 당 소속 의원 일동 명의로 '반대 결의안'을 채택했다. "현 시점에서의 개헌 논의는 국론을 분열시키는 만큼 일절 논의에 응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김성탁.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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