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지역 미군 장기주둔 정책의 배경(해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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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걸프안보 확보후 미군 철수/사우디등 군사력도 강화/미국 중심의 집단안보체제 구상/중동지역 분쟁가능성 커질 우려도
걸프전 종전후 군축등을 통한 중동안보를 구상했던 미국이 걸프지역 미군 장기주둔과 친미 국가들의 군비 강화를 통한 안보정책으로 급선회하고 있어 주목된다.
미국은 조지 부시 대통령이 종전후 중동평화원칙으로 아랍­이스라엘 공존협상 등과 함께 대량살상무기 등의 감축을 제시하고 나섰으나,최근 미국의 힘과 친미 중동국가들의 군비강화를 통한 안보체제 구상을 하고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같은 미국의 구상은 미 고위관리들의 잇따른 발언 속에서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리처드 체니 국방장관은 지난주 전후 걸프지역에 첫번째로 달성돼야 할 일은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그리고 이지역 다른 국가들의 안보확보라고 말했다.
이들 국가의 안보가 확보돼야 비로소 미군이 철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체니 장관은 이와 함께 미국은 이 지역에서 군사기술과 생화학·핵무기 확산을 막기 위해 다른 산업국가들과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체니 장관의 이같은 발언은 미군의 장기주둔과 사우디 등 친미 국가들의 군사력 강화,잠재적 적대국가들에 대한 무기금수를 통한 군축으로 해석되고 있다.
콜린 파월 미 합참의장은 22일 체니의 발언보다 더욱 구체적으로 미 입장을 밝혔다.
파월 장군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군이 걸프지역에 「수개월 더」주둔할 필요가 있으며,플로리다주 탬파시에 있는 미 중부사령부가 걸프지역중 「어느지역」으로 이동주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노먼 슈워츠코프 걸프 주둔 미군 사령관은 24일 탬파시에 사령부는 남더라도 전방사령부는 걸프지역에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부사령부는 미제무기로 무장한 아랍국가군과 동맹에 참여하고 아랍국가의 항구·기지에 폭넓은 접근권을 갖는 증강된 미 해·공군의 지원을 받게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미국은 앞으로 걸프지역에 강력한 미군을 주둔시키며 친미 국가들을 미제 무기로 무장해 중동에 집단안보체제를 유지,미국이 이 지역에서 경찰국가역을 담당할 생각인 것이다.
미국이 구상하는 집단안보체제는 사우디와 쿠웨이트가 걸프협력회의(GCC)를 주도,바레인·카타르·오만·아랍에미리트연합 등과 군사동맹을 맺고,이집트와 시리아가 여기에 가담하며 미국이 중심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반이라크 아랍동맹국들에 대한 군비강화계획은 국무부가 이집트에 F­16전투기 46대 판매를 구체화하고 있는 것을 필두로 점차 확산될 전망이다.
미국은 또 이 지역 국가들에 대한 무기판매와 관련,76년 중단된 군사차관 제공부활을 의회에 요청해 놓고 있다.
미국이 당초 구상했던 군축정책에서 친미 국가들에 대한 군비강화 및 미군 주둔으로 중동정책을 선회하려는 것은 정치·군사·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으로 분석된다.
미 고위관리들은 이번 걸프전에서 이라크에 맞서 싸운 아랍국가들은 전쟁의 분명한 승자로 이 지역에서 존경의 상징인 힘과 참여의 결단에 대한 눈에 보이는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중동평화가 곧 손에 잡힐 가능성이 밝지 않음에 따라 이란의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과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자들의 호전성을 억제하는데는 친미 국가들의 군비강화가 불가피하다는 시각이다.
이와 함께 미 군수산업계의 압력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 군수산업계는 국방비 삭감정책으로 위기의식을 느꼈으나 이번 전쟁을 계기로 중동지역을 「잠재적 고객」으로 판단,중동지역의 군축을 강력 반대하는 로비활동을 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참된 의도가 무엇인가를 아는데는 앞으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현재로서 분명한 사실은 미국이 이번 기회에 79년 이란 팔레비 왕정 몰락으로 상실한 중동지역에서의 군사적 발판을 다시 재건하려는 속셈이다.
이같은 미국의 움직임은 중동에 새로운 군사주의 씨앗을 뿌리는 위험스런 것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친미 아랍국가들의 군비강화가 이스라엘·이란,그리고 시리아의 군사력 증강을 재촉,장차 이 지역의 분쟁가능성을 더 크게 할 것이란 지적이다.
미국의 이같은 정책은 과거 40년간 중동지역에서 미국과 경쟁을 벌였던 소련의 경쟁본능을 되살릴 가능성이 큰점도 함께 지적되고 있다.<뉴욕=박준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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