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는 화해무드 유지/걸프전 이후의 미소관계 전망(해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무기감축등 현안엔 이견/이라크 처리등 대립 예상
걸프전의 전후처리를 놓고 미소간의 의견조정을 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했던 베이커 미 국무장관이 이틀간의 일정을 마치고 워싱턴으로 돌아왔다.
걸프전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노력을 무시하고 미국이 무력으로 사태를 진압함으로써 양국관계가 서먹서먹해진 상황인데다 소련이 연방체제 유지여부를 놓고 국민투표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이번 방문이 이루어져 주목을 끌었었다.
걸프전으로 소원해진 양국관계가 다시 복원될 것인가를 포함,발트3국의 독립요구에 미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가 이번 방문의 관심의 초점이 됐다.
베이커 장관은 고르바초프등과의 회담을 마친 뒤 양국관계 전망에 대해 『미소 양국이 최근의 어려웠던 상황을 극복하고 다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은 미소뿐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도 다행한 일』이라며 『걸프전 이후에도 소련이 건설적인 협조자로 남게 되기를 기대한다』는 낙관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베스메르트니흐 소 외무장관도 『미소는 매우 어려운 시험기를 거쳤으나 이를 극복함으로써 미래를 신뢰할 수 있는 기대를 높여주고 있다』고 양국관계가 원상 회복되었음을 강조했다.
특히 고르바초프의 운명을 결정지을 국민투표를 앞두고 베이커가 방문을 시도한 것 자체가 미국은 국민투표의 결과가 소련의 현 지도부에 긍정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판단과 함께 아무리 내부문제가 있다해도 고르바초프를 계속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베이커가 비록 발트3국 인사를 포함,반고르바초프 진영 인사들을 초청해 따로 만찬을 했다해도 어디까지나 관심의 표시일 뿐이지 소련의 현 지도부에 대한 불신을 나타낸 것으로는 볼 수 없다.
발트3국 문제만 하더라도 베이커는 고르바초프가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는데 대해 만족한다는 견해를 표시하고 있다.
이렇게 큰 테두리에서는 미소 양국이 화해무드를 유지한다는 원칙은 밝히고 있으나 현안을 다루는데 있어 양국은 팽팽한 줄다리기를 계속,두 나라의 관계가 말처럼 회복된 상황은 아니라는 점을 느낄 수 있다.
우선 양국은 이미 합의한 무기감축문제도 마무리를 못지어 오는 5월로 예정했던 양국 정상회담 연기가 불가피하게 됐으며 전후 이라크 처리문제도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략무기협정은 이미 1년전인 지난해 2월 베이커가 모스크바를 방문했을때 『기본장애는 이미 극복했고 기술적인 문제만 남았다』고 밝힌 바 있으나 1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검증방법에 대한 이견으로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소련은 『미국이 정치적 결단을 내리려하지 않아 늦어지고 있으며 우리 성의의 절반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군부와 군수산업계로부터 압력을 받고 있는 소지도부가 양국 실무자가 합의한 내용을 계속 거부하고 있다』고 상호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또 이미 미소를 포함,나토·바르샤바조약국들이 서명한 유럽내의 재래식무기 감축문제를 놓고도 소련이 뒤늦게 조건을 걸고나와 타결이 늦어지고 있다.
소군부는 서명후 뒤늦게 이 감축에 소 해군소속의 3개 사단은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이번 베이커의 방문때도 이 현안에 대해서는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더욱이 전후 이라크 처리에도 의견이 달라 이번주부터 시작되는 유엔안보리 토의에서 미소가 대결할 전망이다.
미국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실현하기 위해 이라크에 대해 반군진압에 비행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등 여러 조건을 내걸고 있으나 소련은 이러한 미국의 조치들이 유엔결의범위를 벗어난 월권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유엔안보리에서 이라크문제를 놓고 경제봉쇄 해제시기와 종전조건 등이 논의될 예정인데 이번 방문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아무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결국 양국이 걸프전쟁 이전과 같은 협조를 다짐했으나 실제문제에서는 계속 팽팽히 대립하는 양상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무기감축,걸프전 이후의 종전처리 문제등 현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미소 협조관계의 장래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