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대통령」 남은 과제/김현일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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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5일로 취임 세돌을 맞은 노태우 대통령은 결코 밝은 기분이 아니다.
아침에 청와대 비서관들의 간단한 하례를 받았을 뿐 대통령주변의 분위기는 대체로 가라앉아 있다. 떠들썩한 자축연을 하기엔 국내외 정세가 너무 어울리지 않기 때문일까.
수서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걸프 지상전 돌입으로 겨우 한숨(?) 돌리기는 했지만 노대통령의 남은 임기 2년은 지내온 3년보다 훨씬 더 가파를 것이란 점을 부인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돌이켜보면 노대통령의 집권 3년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부드러운 스타일의 「보통대통령」으로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민주화를 이루어보겠다는 꿈은 도처에 수습하기 힘든 과도기적 현상을 유발함으로써 자칫 본래의 순수한 의도가 실종될 위기에 처했다.
노대통령은 엄격히 말해 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의 권위주의 통치에 대한 반작용을 분출시키는데는 성공했으나 그 반작용을 새로운 질서로 수렴하는데 실패함으로써 지도력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 때문에 취약할 수 밖에 없는 잔여임기 2년을 앞두고 그가 말 그대로 민주주의를 심는 과도기의 지도자로 기록될 것인가,아니면 변혁의 물결속에 속수무책으로 떠내려가고 말 것인가가 최대의 관심사다.
노대통령이 국민을 묶었던 권위주의의 속박을 풀고 북방외교·통일정책에 나름대로의 획을 긋는 업적을 남겼다는 데는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다.
그러나 지난 3년동안 노대통령의 구체적 족적을 보면 공 못지않게 과도 많음을 알 수 있다. 우선 확신과 대안없는 민주화 열기가 경제와 사회기강에 준 충격은 실로 엄청났다.
대책소홀·갈등의 조정실패로 나타난 민생불안·국가발전의 정체를 오로지 「과도기적 현상」으로 설명하려는 것은 책임회피의 성격으로 비칠 가능성이 많다.
여소야대의 정치불안을 극복한다는 명분으로 추진한 3당합당도 파쟁성등 부정적 요소만 부각되어 국가적 위기관리에는 하등 도움을 주지못하고 있다.
이제 노대통령은 스스로 가속화시킨 레임덕현상과 권위의 해체라는 박토위에 차기 후계구도를 결정하고 경제복원·공권력의 재기를 도모해야 하는 실로 힘든 작업을 추진해야 할 형편이다.
국민직선에 의해 뽑힌 대통령이 임기 5년내내 혁명기와 같은 진통만 겪고 가는 것은 노대통령이나 국민 모두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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