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원자로 개발에 과감한 투자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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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주변국가들에 의해 수많은 침략을 받아왔을 뿐 먼저공격하지 못하고있음을 볼 수 있다. 이렇듯 침략을 받다보니 자연 우리 국민들의 성격이 방어적이 돼버렸다.
새로운 사람을 사귈 때 자신이 피해를 보지 않을까 먼저 걱정하고 가급적 지금의 알고있는 친구만으로 관계를 유지하기 원한다. 새로운 것을 개척할 때에도 성공 가능성을 먼저 고려하지 않고 실패할 경우 자기가 어떤 입장에 처하게 될까 두려워한다.
보수적·방어적이라는 것은 확실한 결과를 보고 안전하게 진로를 정하기 때문에 유리하다. 그러나 과학의 발전측면에서 보면 이런 확실성은 오히려 새로운 기술의 개발을 지연시키고 선진국과의 경쟁에서 결코 이길 수 없는 장애요소가 된다.
항상 남이 개발해 놓고 확실한 결과가 입증되기를 기다려 그때부터 뒤좇아간다면 어떻게 지금처럼 극심한 경쟁에서 이겨낼 수 있겠는가.
원자력 분야에서 지금 신형안전로의 개발여부가 화제가 되고있다. 신형안전로란 기존의 원자로보다 안전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설계된 원자로 개념이다. 원자로내부는 전기가 공급되어야 작동되는 능동형 기기와 그렇지 않은 수동형 기기로 나눌 수 있다. 원자로에서 가벼운 사고가 일어나더라도 자체전력생산이 중단된다. 이럴 경우 기존의 발전소는 전력을 외부로부터 끌어오거나 디젤발전기를 추가로 갖추고있어 자가발전으로 충당한다. 대부분의 냉각계통이 그렇듯 전력을 필요로 하는 능동형 기기로 구성되어 있어 만일 큰 사고가 일어나게 되면 냉각계통의 작동에 전력공급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지가 사고의 진행을 막을 수 있는 관건이 된다. 새로운 개념은 이러한 능동형 기기들을 전력공급이 없어도 좋은 수동형 개념으로 바꾸어 설계하고자 하는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개념의 설계가 제안됐고 금세기 내에 완성을 목표로 개발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새로운 원자로 개념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으나 보수적인 정책으로 투자가 지연되고 있다. 정부나 관련기관들은 앞으로 몇 년 더 선진국들이 개발하는 것을 보고 가능성이 가시화된 후에 뛰어들려고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또다시 경쟁에 뒤지게 되고 결국 특허권 문제로 선진기술을 비싸게 사들여올 수밖에 없으며 잘못하면 기존의 발전소로 안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중동에서 전쟁이 한창이다. 석유가 한 방울도 나지 않는 우리나라와 같은 경우 원자력 개발은 절실하다. 만일 전력공급이 앞으로도 원자력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면 지금 과감한 정책결정이 요구된다.
새로운 일을 추구하는 데에는 항상 모험이 따른다. 무작정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 무모한 일이 될 수 있지만 충분한 가능성이 엿보인다면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고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선진국과의 경쟁은 모험이 없이는 이길 수 없다. 지나친 조심 때문에 과학발전이 지연되고 있었다면 지금부터라도 가능성을 찾아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려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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