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공은 「인정공화국」인가/김동수(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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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인정을 쓴다』는 옛말이 있다. 벼슬아치들에게 뇌물바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지금 온세상이 코를 틀어 박고있는 이 향기롭지 못한 「인정」의 내력은 그러니까 어제 오늘 비롯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를 무릇 인정의 나라라고 한다. 크거나 작거나 뇌물로 되지않는 일이 없음을 이른 것이다. 민생의 고달픔과 국정의 어지러움은 항상 이것이 폐단으로 된다. 귀인도 천인도 착한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도 이를 모르는 자가 없건만 이런 것을 없애기로 마음먹는 자가 없으니 어찌 괴이한 일이 아닌가.』
2백년도 훨씬 전에 실학자 이익이 성호사설의 「인정국」조에서 한탄한 구절이다.
그러니까 그제나 이제나 괴이하기는 마찬가지인 셈이다. 다른점이 있다면 인정국에 공화라는 두글자가 더 붙을뿐 분명히 썩어 문드러져 곳곳에서 냄새가 나는데 썩은 곳을 제대로 찾아내려하지 못하는 것은 다를바 없어 보인다.
『잘못이 있으면 백지화해라』『국정조사권을 발동해서 조사해라』『성역없이 수사해야 한다』 등등 현대판 귀인들의 반응은 구구절절이 옳은 말씀들이다.
그런데 천인들의 귀에는 이런 말들이 곧이 곧대로 들리지 않는다. 냄새를 풍기는 장본인들의 발뺌하는 소리로밖에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일이 터지자마자 진작 다스려야 할 일을 천인들이 공연히 떠벌리니까 마지못해 백지화하라는 것이었다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국정조사권」「성역」 운운하는 소리는 해볼테면 해보라는 억지로 보일 따름이다. 캐다가 보면 『너는 성할줄 아느냐』는 그런 냄새를 풍긴다고 신문지면들은 일제히 전하고 있다.
함께 똑같은 짓을 하고서 누가 누구를 따지려느냐는 협박이란 이야기다. 오죽하면 『뇌물사건과 수서사건은 여는 물론 야도 같은 범죄조직으로 끌어들인 단적인 예였다』고 내뱉는 신문사설이 나올 정도인가.
나라가 송두리째 발가벗겨져 팔려가는 느낌이다. 그런데도 말들은 그럴싸하게 큰일났다 하면서 어떻게 하면 그만 덮을 수 없을까 용을 쓰는 판국으로 보인다.
장본인들이야 아니라고 둘러대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입들이 많은 것이 여간 심상스럽지 않다.
그들 말마따나 관행이었다고 치자. 누구나 그래왔다고 치자. 그런데 그 「누구나」가 누구냐는 점이 문제다.
그 「누구나」끼리 터무니없는 인정을 서로 베풀어오는 가운데 인정 머리없는 대우를 받았다고 믿게된 대다수가 박탈감과 배신감에 분노를 삭이고 있다.
끔직하지만 길거리에서 우연히 듣게된 어느 소시민의 울분을 옮겨적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이 나서 예비군을 소집해 총을 나누어 주면 적군과 싸우기에 앞서 못되게 치부하고 거들먹거리는 작자들을 먼저 혼내주고 싶다.』 어느 젊은 택시운전사의 독기 서린 말에 등줄기가 오싹했던 경험이 불과 며칠전의 일이다.
이런 사람들의 분노도 관행으로 덮어둘 수 있는지 묻고 싶다. 그런 눈과 귀와 입을 어느시절 그랬던 것처럼 찍어눌러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지금의 부패구조를 파헤쳐 닥치게 될지도 모를 아픔과 불행을 겁내 도로 파묻어서는 안된다. 당장 그것을 모르게 한다고 해서 줄어들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그것을 안다고 해서 불행이 늘어나지도 않는다.
그런 불행은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올바르게 대처해야만 극복될 수 있는 것이다.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지난날 처럼 잘못을 질책하는 것으로만 그친 고함을 지르며 저항하는 것으로 한몫해내던 정치가 아니다.
악천후속에서 배가 침몰위기에 빠졌을때 큰일났다고 경고하고 고함지르는 항해사들만 있어서는 제대로 항해할 수 없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의 분노와 좌절의 풍랑속에 기우뚱거리는 체제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더이상 우물쭈물 해서는 안된다.
정치를 연극에 비유한 말이 있다. 『연극은 무대위의 배우들이 끝내게 되는 것이지만 무대위로 쇄도하는 관중들에 의해 끝나기도 한다.』 18세기에 유럽대륙을 휘어잡았던 어느 재상의 말이다.
관중들의 쇄도로 끝나버린 연극을 우리는 이미 4·19에서 경험했고 더 가까이는 동구 공산국가들의 붕괴에서 보고 있다.
우리 왕조시대의 이익도 같은 눈을 갖고 있었다. 그는 「인정」의 폐해를 한탄만 한 것이 아니라 한나라 영제가 뇌물의 폐해를 간하는 신하의 말을 듣지 않다가 황건적의 민란으로 나라를 들어먹은 고사를 빌려 경계하고 있다.
『앞 수레가 넘어진 것이 가위 경계할만한데도 인정의 폐해는 나날이 심해져가고 있다』고 그는 안타까워 했다.
낡은 옛이야기가 아니라 언제나 새겨들어야 할 새로운 이야기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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