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느끼는 현실 시인이라면 정치적 발언도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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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라면 정치적 발언을 해야 한다."

고은(73.사진) 시인이 문인을 비롯한 지식인의 정치적 발언을 촉구하는 발언을 했다. 8일 정오 서울 인사동 한 식당에서 열린 시집 '부끄러움 가득'(시학)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다.

정현종 시인의 북핵 비판 시, 소설가 이문열씨의 현실정치 비판 소설 등 정치적 파장이 큰 문학작품이 잇따라 발표되는 상황에 대해 고은 시인은 "지식인은 과거의 아픔만 말하는 게 아니라 지금 인류가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며 "시인은 자신이 바라보고 느끼는 현실을 표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은 시인은 또 "자유분방하고 백화(百花)가 만발한 게 단순논리보다 낫지 않으냐"며 "나의 의견과 차이가 난다고 다른 의견을 무시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평소 통일운동을 이끌었던 고은 시인은 10월 정현종 시인이 북한의 핵실험을 비판하는 시를 발표하자 "북한은 지혜롭지 못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최근의 사회 갈등에 대해서는 "지금 우리 사회에는 극좌와 극우만 있지 중도는 없다"며 "갈등을 진화시킬 수 있는 중도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밝혔다. 이어 시인은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가치는 인정하지 않다 보니 갈등이 지나치게 많지만 현실의 갈등 자체는 어찌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힘이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고은 시인은 "나는 옛날에 이미 많은 발언을 했기 때문에 지금은 췌언(贅言)할 생각이 없다"며 "굳이 내 생각을 밝힌다면 핵 문제 등 민족의 운명과 관련한 생각을 정리해 내년께에나 공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실정치 참여 의사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정치권에서 수차례 제의가 들어왔지만 모두 다 사양했고, 내년 대선과 관련된 발언 또한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시인은 '부끄러움 가득'이란 시집 제목에 대해 "역사와 현실을 바라보는 지식인으로서의 부끄러움과 겸손한 의미로서의 수줍음을 동시에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시집엔 분단을 아파하고 통일을 염원하는 '평화이야기' 등 94편의 자유시와 생전 처음 써봤다는 시조 5편이 실렸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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