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정리, 한 가족 살리는 일” 일당 20만원 경단녀의 마법

  • 카드 발행 일시202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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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승직업’

푸르렀던 20대 꿈과 성공을 좇아 선택한 직업도 유통기한이 있습니다. 정신없이 달리다 20년, 30년 지나면 떠날 때가 다가오죠. 넘을 수 없는 벽에 부닥쳤든, 몸과 마음이 지쳤든, 더는 재미가 없든, 회사가 필요로 하지 않든…오래 한 일을 그만둔 이유는 사실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건 내가 하고 싶은 일, 즐길 수 있는 일을 다시 시작할 용기입니다. ‘환승직업’은 기존 직업과 정반대의 업(業)에 도전한 4050들의 전직 이야기입니다. 고소득, 안정된 직장이란 인생 첫 직업의 기준과 다르게 ‘더 많은 땀과 느린 속도’의 직업을 선택한 이유를 소개합니다. 이 직업에 관해 궁금한 모든 것, ‘A to Z 직업소개서’와 ‘전문가 검증평가서’까지 중앙일보의 프리미엄 디지털 구독 서비스 ‘더중앙플러스(The JoongAng Plus)’에서 볼 수 있습니다.

널브러진 이불 위로 난방용 텐트가 덩그러니 놓인 안방. 이젠 아무도 눕지 않는 침대와 곰팡이 핀 러닝머신 같은 잡동사니가 빼곡한 작은방. 아이들이 더는 갖고 놀지 않는 장난감들로 발 디딜 틈 없이 좁은 베란다. 다섯 식구가 사는 경기도 구리시 수택동의 한 아파트는 제자리를 찾지 못하거나 이젠 쓸모를 다한 것들이 70㎡(약 21평) 남짓한 공간을 점령한 상태였다.

그랬던 이곳이 3월 19일 하루 만에 완전히 변신했다. 이불이 덩굴마냥 얽혀 있던 안방이 차츰 부부만의 아늑한 쉼터로 바뀌었다. 안 쓰는 가구들이 쌓여 있던 작은방은 어느새 아이들만의 ‘아지트’로 변모했다. 베란다엔 비로소 바닥이라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환골탈태가 이뤄졌다.

인테리어 업자나 건장한 인부들이 집단 작업을 한 결과가 아니다. 신연수(44)씨의 분주한 손길이 만들어낸 결과다. 신씨는 가정이든 공장이든 학교든 그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달려가 손끝의 마법을 부린다. 공간을 정리·정돈하는 마법, 신씨는 정리수납 전문가다.

경기도 구리시 수택동 아파트를 정리하던 정리수납 전문가 신연수씨(44)는 아이가 좀 더 편안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책상 방향을 바꿨다. 이수민 기자

경기도 구리시 수택동 아파트를 정리하던 정리수납 전문가 신연수씨(44)는 아이가 좀 더 편안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책상 방향을 바꿨다. 이수민 기자

건축학과 출신인 신씨는 과거 건설회사에서 일하면서 건물이 설계된 대로 세워지는지 공사현장을 누비던 커리어 우먼이었다. 그러다 결혼과 함께 가정을 돌보기 위해 스스로 6년의 경력을 단절했다. 그랬던 신씨가 이제는 다른 사람들의 터전을 가꾸는 일로 10년 만에 경력을 다시 이어 가고 있다. 그는 어떻게 경단녀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걸까. 그리고 정리수납이 업(業)이 될 수 있는 걸까? 환승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 답을 얻고자 그의 업무 시작부터 끝까지 동참했다. 그렇게 알아낸 모든 것을 ‘환승직업’에서 한 번에 소개한다.

📃목차

1. 이사 날 방불케 하는 정리수납 현장
2. 집 짓던 건축학도, 집 정리에 빠지다
3. “한 가정 살렸다” 마음도 정리정돈
4. 공간 마법 알려주는 선생님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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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사 날 방불케 하는 정리수납 현장

신씨는 마법을 부리기 일주일 전인 3월 12일 의뢰 현장을 홀로 찾았다. 신씨가 정리수납 업계에서 맡은 역할은 팀장. 팀장은 고객의 의뢰가 들어오면 해당 장소를 직접 방문해 견적을 낸다. 견적이란 작업에 몇 명이 필요한지, 공간 재배치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등을 정하는 걸 말한다. 가정집을 예로 들면 가족 구성원은 총 몇 명인지, 생활 패턴은 어떤지 등을 파악해 수납할 업무의 견적을 내는 게 팀장의 역할이다. “아이들은 각각 몇 살이에요?” “각각 어디에서 자나요?” 신씨는 집 안 구석구석을 돌며 집주인 이명희(가명)씨에게 끊임없이 물었다. 각 방의 온도와 습도까지 확인한다. 신씨는 30분가량 집을 둘러본 뒤 집주인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