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도 천국 보내줬다, 55세라 취업 더 쉬운 이 직업

  • 카드 발행 일시2024.03.27

‘환승직업’

푸르렀던 20대 꿈과 성공을 좇아 선택한 직업도 유통기한이 있습니다. 정신없이 달리다 20년, 30년 지나면 떠날 때가 다가오죠. 넘을 수 없는 벽에 부닥쳤든, 몸과 마음이 지쳤든, 더는 재미가 없든, 회사가 필요로 하지 않든…오래 한 일을 그만둔 이유는 사실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건 내가 하고 싶은 일, 즐길 수 있는 일을 다시 시작할 용기입니다. ‘환승직업’은 기존 직업과 정반대의 업(業)에 도전한 4050들의 전직 이야기입니다. 고소득, 안정된 직장이란 인생 첫 직업의 기준과 다르게 ‘더 많은 땀과 느린 속도’의 직업을 선택한 이유를 소개합니다. 이 직업에 관해 궁금한 모든 것, ‘A to Z 직업소개서’와 ‘전문가 검증평가서’까지 중앙일보의 프리미엄 디지털 구독 서비스 ‘더중앙플러스(The JoongAng Plus)’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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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석(55)씨가 열여덟 살 봉춘이가 담긴 관을 안아 올려 고이 놓은 곳은 화장로였다. 봉춘이 엄마 김동희(38)씨는 참관실 유리창 너머로 봉춘이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며 흐느꼈다. 18년 전 봉춘이는 만 3개월이 됐을 즈음 알코올중독자의 손에 이끌려 길거리를 떠돌다가 우연히 김씨의 눈에 들어왔다. 김씨는 봉춘이를 가족으로 입양했고, 봉춘이는 처음으로 따뜻한 집과 가족의 품을 느낄 수 있었다.

코커스패니얼 종으로 순한 얼굴에 장난기 넘쳤던 봉춘이는 평생 가족들을 울고 웃게 하는 재롱둥이였다. 그러다 지난해 십자인대가 파열됐다. 가족에겐 늘 막둥이였지만 이미 봉춘이의 나이는 사람으로 치면 100살을 넘겼다. 두 번의 수술과 침술 치료, 재활치료 등 병원비만 수천만원이 들었다. 하지만 치매에 피부암까지 앓게 되면서 봉춘이의 건강은 급속도로 나빠졌다. 혼자서는 대소변조차 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온종일 집에 누워만 있으면서 허공을 쳐다보는 일이 잦았다. 김씨는 결국 봉춘이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야 했다.

반려동물 장례지도사 이영석씨가 반려견 봉춘이의 관을 들고 화장로로 향하기 전 보호자 김씨 가족에게 인사하는 모습. 김민정 기자

반려동물 장례지도사 이영석씨가 반려견 봉춘이의 관을 들고 화장로로 향하기 전 보호자 김씨 가족에게 인사하는 모습. 김민정 기자

지난 2월 24일 경기도 광주시 소재 반려동물 장례식장 ‘포포즈’. 김씨는 온기를 잃은 봉춘이의 발을 어루만지며 “저 세상에선 아프지 말고 재미있게 놀아”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김씨에게 봉춘이는 둘도 없는 자식이자 친구였다.

김씨를 위로하며 봉춘이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배웅한 이영석씨는 반려동물 장례지도사다. 봉춘이처럼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가족의 이별을 많게는 하루 여덟 번 돕는다. “이름은 어떻게 되죠”라고 물으면서 담요에 싸여온 반려동물을 받고, 한 줌의 재가 된 이들을 곱게 담아 “고생 많으셨습니다”며 다시 건네는 과정. 그는 일련의 과정에 대해 아름답게 보내면 좋은 곳에 갈 수 있을 거란 ‘믿음의 영역’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과거 20여 년간 영어 선생님으로 일했다. 학습지를 들고 학생을 찾아가 가르치는 방문교사였다. 그가 어째서 믿음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됐을까. 이씨는 왜 ‘50대 신입사원’이 되어 반려동물 장례지도사란 직업을 선택했을까. 쏟아지는 의문들의 답을 찾으려고 이씨의 48시간을 따라다녔다. 10여 건의 반려동물 장례식 과정을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해 ‘환승직업’에 담았다.

📃목차

1. 햄스터·고슴도치도…반려동물 장례식 현장
2. 공대 출신 선생님, 코로나19에 다시 신입으로
3. ‘펫펨(Pet+Family)족’ 증가…동물장묘업 성장세
4. “인간과 동물 사이 이해하고, 담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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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스터·고슴도치도…반려동물 장례식 현장

이씨는 봉춘이의 장례절차를 어떻게 진행할지 유족인 김씨와 상담한 뒤 첫 단계인 ‘염습’에 들어갔다. 은색 트레이에 봉춘이를 싣고 염습실로 들어간 이씨. 흰색 한지가 깔린 선반 위에 봉춘이를 누이고, 알코올 묻힌 탈지면으로 사체 구석구석을 닦았다. 솜뭉치로 콧구멍과 항문을 막는 보공(補空)을 진행하고, 빗으로 오물을 떼어냈다. “대소변 자국이 많은 걸 보니 많이 참았었나 봐요.” 이씨는 “염을 할 때 몸에 남은 흔적을 지우며 반려동물의 살아생전을 짐작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