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해외파는 열외, K-리거는 차출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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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프로축구 감독들의 외침은 벽에 부딪쳐 되돌아왔다.

대한축구협회는 13일 이란과의 아시안컵 예선 마지막 경기(15일)를 치를 20명의 대표선수 명단을 발표했다.

19일 K-리그 챔피언결정전을 앞둔 성남 일화의 김용대.김두현과 수원 삼성의 조원희도 포함됐다. 핌 베어벡 감독의 뜻이 전적으로 반영된 결과다. 이들은 13일 밤 테헤란행 비행기에 올랐다. 수원의 백지훈과 서동현은 14일 한.일전 대표다.

주말에 플레이오프를 치른 김학범 성남 감독과 차범근 수원 감독은 소속팀 선수들의 대표팀 차출에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대표팀은 살리고 프로축구는 죽어도 된단 말이냐"며 입을 맞췄다. 당장 13일 파주 축구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 소집에 대표선수들을 보내지 않을 기세였지만 축구협회가 선수 명단을 조정해보겠다고 나서 '울며 겨자먹기'로 선수들을 보냈다.

하지만 13일 NFC로 달려간 이영무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베어벡의 의지 앞에 '뒤통수를 긁으며' 돌아와야 했다.

베어벡 감독은 "K-리그가 잘 되기를 바라지만 이란전은 공인된 A매치다. 골키퍼가 둘밖에 없는데 김용대가 빠진 상태에서 김영광(전남) 혼자 경기를 치를 수는 없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아시안컵 본선 티켓을 확보한 마당에 K-리그 챔피언전에 지장을 주면서까지 선수를 빼가는 것은 부적절한 처사다. 해외파와의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지난달 영국을 찾은 베어벡 감독은 이영표(토트넘 홋스퍼)와 설기현(레딩 FC)의 소속팀 감독들에게 "이란전에 차출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챔피언 결정전은 K-리그 한 해 농사의 결실을 맺는 중요한 경기다. 팬들은 최고의 선수들이 펼치는 최고의 경기를 볼 권리가 있다. 월드컵 예선과 같은 큰 경기라면 프로팀이 희생할 수 있다.

그러나 의미가 없는 대표팀 경기를 위해 프로축구가 계속 희생해야 한다면 한국 축구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한국 축구는 대표팀 축구밖에 없다'는 말을 그만 들을 때도 됐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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