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나누는 마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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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보름 전 2층에 사는 5세 짜리 꼬마 선규의 아버지가 입원했다. 직장인 변전소에서 근무하던 중 화재가 발생해 그만 두 팔에 심한 화상을 입고만 것이다. 젊은 부부가 올 봄에 예쁜 둘째 딸을 낳고 그동안 큰소리 한번 내는 일없이 오순도순 화목하게 살아 이웃들 모두가 부러워했었는데 뜻밖의 재난이 닥친 것이다.
몇 년 전 나 역시 그와 비슷한 사고로 얼굴과 두 팔에 화상을 당한 고통을 경험한바 있고 한쪽 팔엔 아직도 흉터가 남아 있어 그 아픔의 정도가 어느 만큼인지 생생하게 느껴졌다.
소식을 전해들은 다음날 과일 한 바구니를 사 들고 병실을 찾았다. 처음 병 문안 갈 때의 마음은「인생의 선배」로서 그들 젊은 부부를 위로라도 해줄 생각이었으나 나는 오히려 그들로부터 참으로 소중한 깨우침을 얻고 돌아왔다.
병실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 끝에 그는 이번 일로 『다시 태어난 기분을 느꼈다』고 말했다.
『삶과 죽음의 차이는 너무나 가깝고,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감사한 일임을 피부로 느끼고 가슴으로 깨닫게 되었다』고 담담히 털어놓았다.
화상으로 인해·육체는 흉한 상처를 남길지언정 삶에 대한 불만과 갈등에 빠지기 쉬운 정신은 이번 사고를 통해 오히려 성숙해졌다는 이야기였다.
『정말 그래요. 부자는 여행하며 인생을 배우고, 가난한 사람은 병고를 치르며 삶을 배운다는 말도 있잖아요.』그렇게 똑같은 고통을 당해 본 사람끼리 예전보다 더 가까운 이웃이 되어 우리는 서로를 위로해 줄 수 있었다.
살아 있는 시람 끼리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덜어내며 사는 것이야말로 진정 값진 것임을 다시 한번 느낀 병실의 만남이었다. 젊은 아기 아빠의 팔에 흉터가 많이 생기지 않기만 조용히 빌어 본다.
최평자<경기도 광명시 하안동 주공아파트227의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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