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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대학을 못 믿어서야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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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얼마 전 영국의 타임스에서 선정한 세계 100대 대학 발표가 화제가 됐다. 서울대가 지난해 처음 세계 100대 대학에 진입(93위)한 이래 올해는 30계단 상승한 63위에 올랐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세계 12위의 경제 대국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이면서 뜨거운 교육열로 주목받는 우리의 교육 현실에 비하면 부끄러울 따름이다. 우리 젊은 학생들이 청소년기에 누려야 할 싱싱한 아름다움과 건강함을 창백한 얼굴과 맞바꾸고 공부해서 들어간 대학이 세계 다른 대학들에 확연히 뒤처지고 있는 현실에 자괴감을 느낀다.

사실 우리 대학 교육 문제는 오래전부터 수차례 도마에 놓여졌다. 그때마다 대학의 불안정한 재정과 경영 미숙, 교수 자질 등을 들먹이며 많은 논쟁이 이어져 왔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교육 본질에 대한 논쟁은 간과돼 왔다. 다양한 본질적인 문제가 있겠지만 나는 그것을 대학, 아니 교육에 대한 오래되고 빗나간 우리 모두의 과잉관심에서 찾고 싶다. 대학 들어가는 것에, 아니 그 방법론에 학생.학부모.정부가 골몰하고 각을 세우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현실을 지적하고 싶다. 대학 입시철만 되면 언론들이 앞다퉈 일제히 입시를 다루는 나라,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입시 전형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나라, 대학수학능력시험 날에는 비행기도 안 띄우는 나라, 실기 시험장을 학부모들이 지켜 서서 감시하는 나라가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면서도 정작 그런 대학들을 지원하고 키워주는 것에는 무관심하고 철저히 대학을 불신하는 나라다.

소위 세계 최고 대학이란 곳은 어떠한가. 우리처럼 학생을 뽑는 과정이 철저하게 불신당하며 감시와 참견을 받고 있는지 묻고 싶다. 대학마다 설립 목표와 지향하는 특성이 다양하다. 따라서 학생을 어떻게, 누구를 뽑느냐는 것은 100% 그 대학의 재량권이다. 우리는 그것을 믿고 인정해 줘야 한다.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 학생은 왜 뽑았고 저 학생은 왜 떨어졌는지에 대해 해명하고 밝히지 않는다. 그들의 정부는 어떠한가. 분명한 것은 규제와 간섭을 일절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2013년을 기점으로 대학 입학 정원이 급격하게 줄 것이다. 이에 따른 대학의 지각 변화는 벌써 일어나고 있다. '제대로'하는 대학은 그때도 건재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대학은 자동 퇴출당할 것이다.

우리 대학이 세계 속의 대학으로 커 나가려면 우리도 일단 대학을 믿고 자율권을 돌려줘야 한다. 그래서 대학마다 혼신을 다해 용틀임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야 한다. 이제 그만 '대학' 본질이 아닌, 대학에 들어가는 방법에 대한 논의가 국민적 관심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각 대학의 생존과 발전은 그 대학 구성원들이 가장 심각하게 고뇌하고 길을 찾고 있다. 따라서 그들이 고뇌해 내놓은 방침을 믿고 지원해 줘야 할 때다.

글로벌 시대니, 국제 경쟁력이니, 시장개방이니 하는 높은 파고 속에서 우리 대학들이 더 이상 난감해지지 않으려면 그들이 힘있게 날갯짓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어렵겠지만 대학을 우리의 지나친 관심에서 놓아주자. '수험생의 인권'을 소진하지 않고도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해 그들의 꿈을 키워주는, 아름다운 곳으로 회복시켜 줬으면 한다. 그래야만 자유경쟁 논리에서도 당당한 위치를 가지면서 세계 속에 우뚝 선 대학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수형 청강문화산업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