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규원장 "국정원에도 의식화된 사람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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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규 국가정보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 배경이 드러나고 있다. 김 원장의 사의는 '386간첩단 사건'과 대북 정책노선 갈등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또 국정원 내부에도 의식화된 사람이 있다며 정치권 '코드'에 맞추려는 국정원 일부 고위간부들에 대한 불신감을 피력한 것으로 복수의 관계자들이 전했다고 문화일보가 보도했다.

이 신문은 국정원 사정에 정통한 정부 당국자는 30일 "김 원장이 북한 핵실험 이후 정부 내부와 일부 시민단체 등에서 남북관계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자 '어떻게 이 지경까지 되었느냐'며 격노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그는 "김 원장은 북 핵실험 이후에도 대북 포용정책을 계속해야 한다는 논법에 대해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고 강조했다. 그는 "김 원장이 (대북 포용정책을 설파하는)이종석 통일부 장관 등과 큰 대립을 이룬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 수집 및 판단을 담당하는 국정원의 수장인 김 원장이 여권내 주류인 대북 온건론자들과 대북 노선에 대해 이견이 심각했다는 것이다.

문화일보는 이 당국자의 말을 빌려 "김 원장이 '국정원 내에도 의식화된 사람이 있다'고 했다"고 전했다. 김 원장은 대북정책을 놓고 정부 주류와 코드를 맞춘 국정원내 일부 고위 간부들의 집중적인 견제에도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날 "김 원장이 일을 하면 신바람이 나고 그래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전했다.

정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국가보안법 폐지 또는 개정으로 국정원이 국내문제를 수사할 수 없도록 하자는 논의가 있어서 국정원 내에서도 수사가 크게 위축되었다"면서 "김 원장은 국보법 문제와 관계없이 국내(간첩) 부분을 수사해야 한다고 밀어붙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386 간첩사건은 이미 오래전 내사를 해왔고 한달전 본격적인 수사를 진행했다"면서 "수사 보안 유지 및 만일의 방해흐름 등을 고려해 청와대에 보고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 원장과 가까운 한 인사는 "간첩사건 수사 같은 것은 김 원장의 철학이다. 나라를 위한 것이다"고 단언했다. 그는 "어떤 사람들은 여권 386 세대들에게 왜 코드를 안 맞추느냐. 지금 시점에 왜 간첩사건을 공개하느냐고 그러지만, 김 원장의 생각은 다르다"고 말했다. 이 측근은 이어 "이런 일들(간첩 사건수사 등) 하는 데 (여권이) 좋아하지 않고…" 라면서 "국정원장 하려는 사람이 많은 것 아니냐"고 냉소적으로 반문해 김 원장에 대한 여권내부의 견제가 심했음을 시사했다.

한편 김 원장은 29일 예배뒤 조선일보 기자와 만나 "일부 인사들이 (국정원장이 되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는데 이들이 되면 절대 안된다. 정치적 중립에 도움이 되지 않고 코드를 맞출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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